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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문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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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619회 작성일 23-10-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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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한 신 도깨비’에서 김고은(지은탁 분)이 공유(김신 분) 따라가다 그가 들어간 곳의 문고리를 돌린 순간, 자신도 모르게 캐나다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서울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통로였던 자주색 문 앞에 서니 여기저기서 은탁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물론 나는 도깨비나 도깨비 신부가 아니어서 공간이동으로 국경을 넘진 못했고, 몬트리올 공항을 통과하여 그곳에 갔다. 눈앞에 펼쳐진 쁘띠 샹플랭 거리와 낯선 사람들을 보며 은탁이 대체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던 그 거리가 나 또한 낯설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겨우 세 시간여를 날아왔을 뿐인데, 국경 하나를 넘으니, 언어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달랐다. 

  도깨비를 네 번 보았다. 유튜브 짤방까지 합하면 계산이 불가하다. 당시 나의 핸드폰 초기 화면은 ‘공유’였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보았다. ‘남과 여 ’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핀란드도 가고 싶었지만, ‘도깨비’ 촬영지인 퀘벡(Quebec)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렜다. 

  “박 작가, 여행사에 보내야 하니 여권이랑 면허증 카톡으로 보내줘.”

  그녀가 아니었다면 캐나다 여행은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 해외여행이 맘먹는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나처럼 일이 따라다니는 사람은 누군가 등을 밀어주어야 간신히 밀려가지, 혼자는 못 가기 때문이다. 작년에 지역 라디오에서 주관한 캐나다 단풍 관광을 다녀온 지인이 너무 좋았다며 올해는 같이 가자고 권했다. 

신문에서 여행사의 패키지여행 상품 광고를 보며 부러워만 했던 내겐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아줌마는 남편에게 묻지도 않고 신분증을 내주었다. 콧바람을 쐬고 오면 글이 더 잘 써질 거라는 그녀의 말을 백 퍼센트 맹신하고 싶었다. 

  여행을 결정하고 기다리던 중 캐나다 산불 소식이 연일 보도되었다. 거대한 불길이 빠른 속도로 번져 피해 소식이 전해지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다 큰맘 먹고 떠나려던 여행이 취소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했다. 일정을 취소한 지인도 있고, 비행기표 취소와 재 발권 등 변수가 있었지만, 일정대로 떠나게 되었다. 

몬트리올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섰는데, 여기저기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불어가 훅 치고 들어오니 일순간 퓨즈가 나간 느낌이었다. 그들의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세계 각국 사람이 드나드는 공항 입국장조차도 영어 안내문은 눈을 아주 잘 닦고 보아야 한두 군데 붙어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퀘벡 단풍 관광’이라는 말 앞에 ‘봉쥬르라는 말이 붙어 있었던 걸까? 암튼 언어 때문에 안녕하지 못했다.

입국 심사 담당관이 왜 왔냐고 물었을 때 정신이 들었다. 여행하러 왔다고 했다. 한국 방문 목적은 늘 병원가는 거였는데, 여행이라니! 그런 등 따습고 배부른 대답을 하게 되는 날이 도래하였다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다. 

불어라고는 봉쥬르(bonjour)와 멸치볶음(merci beaucoup) 밖에 모르는 나는 화장실 찾는 데도 고초?를 겪었다. 청소하는 분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힐끔 쳐다보았다. 내 발음이 그렇게 더러운가 싶어서 다시 말했더니 “washroom?”하고 반문했다. bathroom 비슷한 의미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안 통해도 눈치는 있어서 지릴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둘째 날, 드디어 도깨비 촬영지를 가게 되었다. 김신이 자신의 비석 앞에 앉아 가족을 추모했던 아브라함 평원. 자주색 문이 있는 쁘띠 샹플랭 거리. 은탁이 김신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결심하고 사랑을 고백했던 일명 ‘목 부러지는 계단’. 퀘벡 주의사당과 그 앞에 있는 투르니 분수. 가난했던 은탁이 동화 속 나라 같은 공간을 보게 된 크리스마스용품 가게 부티크 노엘. 퀘벡시의 랜드마크이며 김신의 소유였던 페어몬트 샤또 프롱트낙 호텔과 그 앞의 다름 광장. 한 폭의 풍경화 같았던 로렌스강과 크루즈를 실제로 보니 그들의 흔적이 남아서인지 낯선 땅이 이내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행 중 한 분은 가톨릭 신자여서 유명한 성당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좋다고 하셨는데, 나는 드라마 촬영지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캐나다’ 하면 떠오르는 게 나이아가라 폭포, 캐나다에 오기만 하면 공항에서 공항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던 문인, 그리고 나의 공유가 나온 드라마 촬영지였다는 것 외에 딱히 저장된 게 없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래서 모든 장소가 새로웠고, 우중임에도 아름다웠다. 음식, 호텔, 최선을 다해준 가이드, 여행을 함께 한 지인과 동행했던 분들…그 모두가 좋아서 힐링이 되고 새로운 힘을 얻었다.

또다시 오늘이라는 시간 앞에 섰다.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자주색 문은 어디에 있을까? 뉴스를 보는 게 두려울 만큼 세상은 전쟁과 자연재해, 바이러스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운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줄 영웅과 도피처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전쟁터가 그러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와 힘든 생활전선이 그러하다. 자기가 진 십자가가 제일 무거운 것이어서 그들은 슈퍼맨, 배트맨, 도깨비 등 말도 안 되는 영웅 드라마를 보며 위로 받는 건 지도 모르겠다. 나도 은탁이처럼 손편지를 써서 샤또 프롱트낙 호텔에 있다는 황금 우체통에 넣고 싶었다. 

도깨비 신부까진 바라지 않으니, 세상의 평화를 지켜달라고.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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