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전쟁은 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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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는데?” 뭐가 그리 심각한지 잔뜩 짜증 섞인 내 말투에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불 속에 있는 나를 부추겼다. 나는 눈이 아파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남편을 째려보았지만, 먹히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나는 잡힌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툴툴대며 따라나선다. 뒷문을 열고 나서는 남편을 따라 밖으로 나서니, 후~ 덥다. 더위가 숨을 확 잡아챈다. 달라스의 올여름은 엄청나게 길 것 같다. 매일 안에만 있다가 일요일이나 나와 보는 밖은 지난주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 뭘 봐야 하는 건데?” 으레 그렇듯이 토요일 밤의 피버에서 아직 나오질 못 한 나는 상황 판단이 안 되는지라 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설명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뒤뜰 여기저기에 처져있는 철망을 보고 난 뒤였다. 남편은 기어이 전쟁을 선포하고 말았다.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늘 조용히 물러서던 사람.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라는 일념으로 나와 함께한 35년을 슬기롭게 지켜낸 사람이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는지 토끼들과 다람쥐들과의 전쟁을 시작했을까. 그 첫 번째 비책이 바로 철조망이었다.
욕심이라고는 일도 없던 사람이 대단한 농사라도 짓는 것처럼 흥분해서 식식거리는데 나는 왠지 재미있어 남편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거냐며 게네들이 먹고 남겨주면 그냥 조금만 얻어먹는 걸로 하자고 약을 올렸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고 다 농사에 소질이 있으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팥 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리 단순하던가. 아무리 공을 들여도 절대 모르는 게 농사이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하늘의 뜻이 함께해 줘야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자식 농사라고 하지 않던가. 잘 키우면 뭐 하나. 이상한 짝을 만나 똑 따먹히면 말짱 도루묵인데.
말인즉, 남편의 올여름 농사는 망쳤다. 씨를 뿌리고 토마토와 고추 피망 등, 여러 가지 모종을 텃밭에 사다 심으며 싱싱한 야채를 질리도록 먹여주겠다던 꿈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안 심은 게 나을 뻔했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봄에는 상추며 쑥갓, 부추 등, 싱싱한 푸성귀가 저녁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었다. 막 자라기 시작한 새끼손가락만 한 풋고추 두어 개를 따서 내 밥그릇에 올려주며 즐거워하던 모습은 행복한 농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남편은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먹을 만하게 자랐는가 싶으면 토끼인지 다람쥐인지가 똑 따가고 없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 먼저 시식을 해놓아서 당최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채소를 약탈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꽃이란 꽃은 다 따먹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일이었다. 한밤중에 울린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라서 나가보니 남편이었다. 기가 막히고 어이없다며 대문 밖으로 굳이 나와보라는 것이었다. 올봄에 남편은 커다란 화분 두 개를 사다가 대문 양옆으로 놓고, 그곳에 알록달록 보기 좋은 수국 몇 그루와 가장자리에는 채송화를 심어놓고 자랑을 했다.
작년부터 남편은 수국을 사다 여기저기 심기 시작했다. 작년에 화단 여기저기에 심었던 수국들이 한 그루도 살아남지 않아서였는지 올해는 화분에 키우기로 한 모양이었다.
자리를 잡은 수국은 화분 가득 풍성하게 자라서 보기 좋았다. 그런데 모슨 조화인지 울긋불긋 화사했던 수국들이 몽땅 연두색으로 변해버렸다. 그것도 하루아침에, 아니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건 변덕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연두색 수국도 나름 괜찮다고 예쁘다고 다독이며 하루아침에 돌변한 변덕쟁이 수국 옆에서 열심히 꽃을 피우는 채송화가 하도 예쁘고 기특해서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마음을 쓰고 있었다.
도대체 그놈들은 어디까지 해야 직성이 풀릴 건지, 너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채소와 꽃을 다 먹어 치워도 채송화만큼은 무사했다. 그런데 채송화꽃까지 한 송이도 안 남기고 다 따먹고 말았다.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의 것은 무참하게 짓밟고 천륜까지 갈라놓는 인두겁을 쓴 것들도 많은 세상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미물들과 전쟁은 해서 뭐 하겠느냐며 포기하라고 남편 어깨를 다독여 주고 들어왔지만, 화가 나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가끔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들어올 때면 늘 마당 가까지 나와 뛰놀다가 자동차 헤드라이트 안에 갇혀 꼼짝 못 하고 멀뚱히 쳐다보는 토끼들이 반가웠던 적도 많았다. 힘든 하루를 보낸 나를 위해 마중 나왔나 싶어 위로가 되기도 했었다.
얼마 전에 환갑을 맞은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가벼워지려고 노력한다. 마음대로 생각한 대로 갈 수 없는 게 사람의 길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나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나 자신도 모르면서 누구를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싶어 될 수 있으면 조용하게 살기로 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세상에 나왔으니 살았다는 흔적은 남기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내가 가진 역량보다 더 많이 애를 썼으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내 노력은 언제나 너무 넘쳤거나 미달이었다.
요즘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맹자>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 줄어든 말로, 입장을 바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이해 못 할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가벼움에 대하여
탕!
무게가 나뉘거나 합칠 때
힘은 반드시 제 자리에 든다는 선언을 한다
제자리에 제 무게를 부리는 것이 명중일 때
힘은 그만한 과시로 저를 지키는 일을 하는
제 몫의 소리를 낸다
어느 한순간이라 해도
그것의 호흡은 그것을 드러내는 무게로 인한 존재
온몸으로 숨을 쉬는 신호를 타전하는 것이다
툭툭 어둠을 털고 일어서 나가는 객체는
누군가의 무게였으니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제 그림자를 끌어오려면
툭툭 어둠을 털고 일어서야 한다며
무언가가 남을 까 봐 시선을 멀리 꽂아놓고
번번이 마침표 없이 잘려 나가는 저무는 소리를 낸다
작은 존재라 해도
나갈 때 남기는 소리는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는 가치로
공허함이 크게 우는 울림이다
텅!
김미희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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