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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한인작가 ‘짧은 글’릴레이] 미주 한국학의 메카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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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484회 작성일 22-10-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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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2일 하와이 대학 한국학연구소(CKS  Center for Korean Studies)는 개소 50주년을 맞이하는 잔치를 벌렸다. 

50년의 역사 속에 일어났던 일들을 회고 하고 한국학을 위해 도전했던 교수님들(GlenForrest Pitts, Glenn Paige, Hugh Kang(강희웅),William Lebra, Herbert Barringer, William Henthorn, Dae-Sook Suh 서대숙, Ho-Min Sohn 손호민, Yong-ho Choe 최영호) 의 노력과 실적을 치하하고 한국학연구소 건물을 짓기까지의 모험담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하와이대학 마노아 캠퍼스에 자리잡은 한국학연구소는 자연 산 속에 들어앉은 모습이 한없이 젊잖다. 암록색 붉고 노란 검정 흰색의 단청과 고려청자의 고운 빛 청기와는 하와이의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하와이 대학 주요 건물들인 케네디 극장과  이스트 웨스트 센터, 해밀턴 도서관 같은  현대식 건물이 늘어선 중에 하와이대학 한국한연구소는 단연 이색적일뿐 아니라 자태가 경이롭기까지하다. 한국학연구소는 한국인의 자존감의 표현이다.  

경복궁에 있는 근정전을 그대로 본 떠 만든 연구소 건물은 강희웅 교수의 의견이었다고 하는데 ‘근정(勤政)’, 부지런하게 정치하라, 부지런히 공부하라 ’는 뜻을 전하고 싶은 학자적인 발상에서였을 것이다.

그날 우연히도 한국학연구소와 돌다리로 연결되어있는 아담한 정자에 올라가 식사를하게 되었다.  

간단하지만 고급스럽게 차려진 점심을 들며  해리슨 김 교수와 이야기를 하던 중 이 정자가 목재가 아니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국학 연구소는  3층의 시멘트 콩크리트 건물로 완전 최 첨단 현대 건물’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놀라웠다. 나는 그 때까지 한국학연구소와 아름다운 정자가, 내부는 전기 파워가 들어와야 되지만 외부는 당연히 목조일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정자의 붉은 기둥을 쓰담듬어보고는 ‘진짜네. 나무가 아니고 시멘트구나’하였다.  

해리슨 김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한국의 전통 건축 형식 대로 나무로 건물을 만들 경우 단청하기도 어렵고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멘트로도 전통모습을 살리고 한국적인 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 정신 덕분이라고까지 했다. 

나는 이 건물이 경복궁에 있는 근정전을 본뜬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목조 건물일거라는 선입감을 가지고있었던 것이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붉은 기둥과 빗살무늬 창살과 2층의 처마와 화강암 댓돌 그리고 단청 등 모든것이 근정전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이곳을 여러번 찾았는데 왜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통찰력 부족을 실감하며 한편 까다로운 목조가 아니고 시멘트 건물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학연구소의 건축은 1974-1980 사이 한국정부에서 내어준 착수금으로 $ 200,000만달러로 시작을 하고 얼마후 $300,000와 $250,000해서 총$750,000받았으나 1980년 완공까지는 총 공사비는 $1,500,000가 들어갔다. 이에 모자라는 부분을 하와이 한인들의 모금(hard-earned money)으로 25만달러가 합해졌다. 한국학연구소 곳곳에는 한인 기부자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Edwin C.S. Noh,  Young-ok Chung,  Katherine K. Choy,  Dewey Kim, Henry Koo Kim, Chung Dho Ahn이 그들이다.

한국으로부터 건축자재 시멘트, 나무, 청기와, 화강암 댓돌 등이 무상으로 조달 되었고 건축기술자, 단청 전문가, 타일공, 페인터 공, 나무 창만드는 기술자들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해리슨 김이 쓴 글에는 이들을 ‘worker’라고 했던데 내가 보기에 이들은 한국 고전 건축의 대가들인 도편수들이었을 것이다. 

도편수(都邊首)는 조선시대에 건축공사를 담당하던 기술자의 호칭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옥, 사찰, 궁궐 등의 건축물을 다루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이 시멘츠 건물을 다듬어 한국 전총의 우아한 건축물을 탄생시킨것이다.

집을 짓는 실질적인 일은 하와이 동포 윌리엄 정이 맡았다. 그는 ‘20세기가구점’을 창업한 사람으로 하와이 건축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 정은 한국에서 온 기술자 20명을 자택에서 기거 하도록 하고 한국 음식을 대접을 했다.  

이들 항공권은 소설가 한무숙씨의 권유로 당시 동아판넬 사장 최성모씨가 냈다고 한다. 정자에는 김성진 화가의 그림이 있고 연구소 정문 층계 벽에걸린 ‘설악산도’는 민경갑 화백의 그림이다. 이병도 박사의 글씨와 박정희 대통령의 육필 ‘머릿돌’이 그곳에 있어 이미 이곳은 작은 박물관이 되었다.

한국학연구소  초대 회장으로 고 서대숙 교수가 맡았고 후임으로는 고 이정훈 경제학 박사, 손호민 박사, 김영희 문학박사, 이상협 경제학박사에 이어 현재 법학박사 백태웅 소장이 활발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해리슨 김 교수(Associate Professor , Dep of History)와Hanna Granoff 교수가 편집 디자인 한  50주년 기념 책자 < CKS at 50(CelebrationFive Decades of the Center for Korean Studies 1972-2022, University of Hawaii’i at Manoa)>에는 한국학연구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한국학연구소가 잉태 되어서 산고를 치루고 태어나기까지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은 자료가 되었다. 

한국학연구소에 얽힌 체험담을 기고한 교수님들의 글 읽는 재미도 있었다. 한국학연구소의 계속되는 발전을 기대한다.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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