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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연말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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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539회 작성일 22-12-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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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수감사절은 새벽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며칠 전에 산 터어키를 냉장고에 두었었는데, 전날 만져보니 등 부분이 아직 덜 녹은 것 같아 키친탑 위에 두고 잠을 잤다. 

올해는 터어키는 굽지 말고 갈비와 사이드 디쉬만 만들어 먹자고 했지만, 막상 추수감사절이 가까워지자 칠면조 없는 추수감사절은 앙꼬 없는 찐빵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은 또 사게 되었다. 

다행히 다른 물가에 비해 터어키 값은 그다지 오른 것 같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미국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명절이 되면, 명절 식품에 관한 한 바가지 물가는 없다는 것이다. 

아, 그래도 크렌베리 캔은 예년에 비해 한 30전 오른 것 같기는 하다.

 

생각해보면 올 한해는 참으로 뒤숭숭한 한 해였다. 푸틴의 도발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고, 올 봄에 치러진 대선으로 한국은 대통령이 바뀌었고, 미국 역시 최근에 치러진 중간선거로 하원을 공화당에 내주었다. 

코비디 정국이 많이 풀리기는 했지만,  완전히 가신 건 아니어서, 지난달 방문했던 서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면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특히 지하철역은 표를 스캔할 때마다 마스크를 안 쓰고 있으면,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미국은 거의 자율적이지만, 대체적으로 안 쓰는 분위기여서 혼자 착용하고 있으면, 감기나 코비드에 걸렸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어쨌든 주변가족들 모두 큰 병없이 함께 추수감사절 식사를 할 수 있게 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더 많은데, 각종 소셜 네트워크를 자주 접하다 보면 요즘은 늘 불안해진다. 예전 같으면 실시간으로 접할 수 없는 각종 소식이, 빠르게 초분 단위로 전 세계에 전달되어 더 그런 것 같다. 

그중 우크라이나 전쟁은 최악으로 죄 없는 인명이 날마다 희생되고 있어, 온 세계인들을 무척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제  겨울인데 접전 지역 주민들은 전기도 물도 없이 추위에 떨고 있는 영상을 최근에도 보았다. 이런 마당에 정상이 아닌 푸틴은 더 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통으로 내몰고 있다. 

한 국가의 리더를 잘못 뽑으면 인류가 얼마나 곤경에 처하는지를 이번 전쟁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통령으로 인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나는 시청앞을 지나게 되어 그곳에 설치된 분향소엘 가게 되었다. 그런데 단 위에는 희생자의 위패도 영정도 없이 국화꽃만 잔뜩 쌓여 있었다. 묵념을 하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쪽은 여전히 데모의 왕국답게 주말이면 각종 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친구는 주말저녁 해설사가 포함된 고궁전시회를 예약해두었는데, 결국 주차장을 찾지못해 우리는 한 시간이 넘게 주변을 헤매다 포기하고 돌아왔다.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도 소음 때문에 귀가 멀 것만 같았다. 그래도 추억의 태극당 빵집에서 모나크 샌드위치를 먹고, 광장시장에서 떡볶이도 사먹고 왔다. 말랑한 깨강정이 미국서 먹던 맛과는 다른 맛이어서 놀랐다. 명동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없는 탓에 좀 한산해보였는데, 달러환전은 이곳이 가장 좋았다.

 

올해도 몇 번의 여행과 여러 인연들과의 만남으로 훌쩍 지나갔다. 

페이스북에 의하면 지인을 포함 가장 평균적인 친구의 숫자는 보통 150명 정도라고 한다. 그중에는 일 년에 한 두 번 만나거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일 주일 간격으로 만나는 사람, 날마다 보는 가족등등, 다양한 층이 포함되는데, 일단 자주 보지 않아도 찐친구나 혈연관계는 변함이 없지만, 그 외의 인간관계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좋은 인연을 유지하려면 상호간 관심과 배려가 지속되어야 하는데, 바쁜 세상에서 그 또한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노후에 가장 필요한 연금은 돈, 건강과 함께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라는데, 과연 우리는 얼만큼의 연금을 준비해두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서 무엇인가를 구해내는 일로 글을 쓴다는 올해의 노벨 문학상 작가 아니 에르노는  수상작 <단순한 열정> 후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것이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정 없이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산다는 말일 것이다. 그녀는 대체로 자신이 겪지 않는 일은 글로 쓰지 않는 경향이 있어, 평론가들은 그녀의 소설을 선뜻 픽션이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품들은 결국 장르를 뛰어넘어 문단의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저녁이 되면 지붕에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을 하는 집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해마다 맞는 연말 풍경이지만 매 해마다 다른 느낌이 나는 것은 왜 일까? 한 해의 끝, 막다른 골목에 오면 갈 곳을 잃은 술래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과의 숨바꼭질에서 항상 꽁꽁 숨어버리거나, 너무 일찍 들켜버리거나 간에, 우리는 지나는 시간을 이길 수가 없다. 시간을 허비한 죄로 한 해를 조용히 접을 준비를 하며, 2022년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정훈희의 <안개>를 들으며…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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