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 ‘베가스’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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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훅 느껴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화씨 107인데도 길거리에 사람이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달걀프라이도 해먹게 생긴 땡볕을 가릴 거라곤 모자와 선글라스뿐인데도, 사람들은 스트립이라고 불리우는 라스베가스 메인 도로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또 걷고 있었다. 텍사스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외출을 날마다 했다. 걷다가 지치면 눈에 띄는 건물 안으로 그냥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서면 사막의 열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실내엔 아라비안나이트에나 나올 법한 오아시스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각기 다른 컨셉으로, 테마 파크처럼 지어진 호텔들은 이름에 걸맞은 건축물과 장식, 갖가지 먹거리나 전시로 미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었다.
뉴욕, 뉴욕 호텔로 가니 자유의 여신상이 거의 실물 크기로 서 있었고, 뉴욕의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거리가 호텔 안에 즐비했다. 뉴욕의 유명한 쉑 쉑(shake, sack) 버거와 브루클린의 마가리타 피자는 물론 미니 센트럴 파크까지 있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패리스 호텔, 역시 에펠탑과 상젤리제 노천 카페를 그대로 본 떠 놨으며, 이 카페의 브런치는 유명해서 예약은 필수라고 한다. 룩소호텔 역시 이집트처럼 꾸며 놨는데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턱 버티고 있음은 물론, 이집트를 상징하는 각종 조형물이 층마다 그득했다.
밤이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레이져 불빛이 쏟아져 나와, 근사한 베가스 밤을 더욱 빛나게 했다. 시저스 팰리스엔 전쟁터가 아닌 카지노를 가르키고 있는 시저스를 볼 수 있으며, 쇼핑 명소 ‘포럼’ 역시 곳곳을 로마의 신전처럼 꾸며 놓았다. 벨라지오나 윈처럼 고급호텔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보다 못한 호텔이라도 컨셉에 맞는 한 가지 구경거리는 틀림없이 있었다.
플라밍고 호텔엔 핑크 플라밍고가 노닐고, 만달레이 베이엔 상어가 있는 수족관과 거대한 인공 비치가 있었다.
애초에 갬블엔 취미도 없는 우리 부부가 베가스에 가서 뭐하지 했던 걱정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호텔 투어를 하면서 사라졌다. 호텔끼리 연결된 트램을 타고 다니거나, 8불짜리 RTC버스를 타면 하루 동안 베가스의 사우스와 노우스 지역을 어디든지 기웃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라스베가스는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미국에서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이다. 1만 피트 이상의 산들로 둘러싸인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를 처음엔 마피아가, 나중엔 하워드 휴즈나 스티브 윈 같은 사업가들이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신기루같은 도시를 만들었다. 신기루가 무엇인가, 상상속에 드러난 잠깐의 실재나 우리가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체는 없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다.
과학적으로 사막지역은 윗공기는 차갑고 아래쪽은 사막의 복사열로 굉장히 뜨겁기 때문에, 불안정한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하여 이 신기루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 전 사막을 헤매이던 카라반들은 야자수가 줄 서 있는 오아시스 신기루를 쫓아가다가 결국은 탈진하여 생사의 귀로에 섰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데 타고난 소질이 있는, 이 겁 없는 미국인들은 그 신기루를 실제의 오아시스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신기루 같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온 재산을 카지노에서 탕진하고 있는 현대의 카랴반들도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현실이 고달플 때마다 오아시스를 꿈꾸게 된다.
한동안 베가스는 신시티(sin city)로 악명이 높았다. 청교도적인 가치관을 지닌 미국인들에게 일을 하지 않고, 도박으로 돈을 벌어 백만장자의 꿈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그러기에 향락과 유흥과 도박의 도시는 멀리 할수록 좋다고 여겼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도 다운타운엘 가면 라이브 뮤직 무대 주변을 ‘회개하시오’(repent) 라는 글자가 쓰여진 팻말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다소 야한 옷차림으로 사진촬영을 해주겠다며 호객행위를 하는 여자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또한 홈리스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 그들이 도박으로 영혼까지 털린 사람들이 아니기만을 바랄뿐이다. 그런 연유로 베가스의 원래 주민들은 특별한 날 외에는 스트립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시민들이 63빌딩에 자주 가지 않는 것처럼, 홍대부근에서 놀지 않는 것처럼, 관광지는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로 북적일 뿐, 찐 시민들의 삶은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는 것이다.
올 여름 휴가를 베가스로 정한 건 순전히 갑자기 오른 개스비 때문이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올 해는 자동차여행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 20년전쯤에 단체 관광으로 하루 머물렀던 베가스를 떠올렸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휴가지로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덥기는 하지만, 워낙 볼거리, 먹거리, 구경거리가 많아 심심할 사이가 없고, 스트립을 돌아다니다 더우면 풀장에서 좀 식히고, 유명한 맛집을 검색해보거나 무료전시회를 찾아다니거나 했다.
밤에는 걸어 다니다 화산쇼나 물쇼를 구경하고, 베네치안 호텔의 가짜 수로에서 뚱뚱한 뱃사공이 부르는 엉터리 세레나데를 듣는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물가는 너무 비쌌다. 그냥 평범한 한 끼도 두 사람이 50불은 기본이고, 고든 램지처럼 유명한 쉐프의 햄버거 같은 경우는 우리 동네 버거의 다섯배 가격이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브런치 식당이나 유명한 뷔페는 줄을 서서 몇 십분씩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왔다.
불경기에 인플레이션이 심하다고 하나, 라스베가스는 불황불패이고 24시간이 바쁜 시티처럼 보였다.
새벽 3시에도 공항 가는 택시는 흔했고, 도시는 대낮보다 더 환하게 반짝거렸다. 공항에는 역시 베가스답게 여행객들의 마지막 잔돈푼마저 탈탈 털려는 슬롯머신들이 가는 곳마다 자리 잡고 있어 실소가 나왔는데, 과연 카지노 왕국답다는 생각이 들며, 내 인생의 잭팟을 그려보았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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