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옥탑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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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옥탑에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심 부러웠다.
가장 꼭대기여서 하늘이 잘 보이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미면 캠핑 간 것 같은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흐리고 습한 바람이 불었다.
봄을 느낄 새도 없었는데 여름으로 건너가려는 모양이다. 구이동 골목에는 6층 높이의 건물이 많다. 외벽에 원룸을 빌려준다는 광고가 붙어 있고 편의점과 카페에 오는 손님층이 젊은 것으로 보아 혼자 사는 이들이 많은 지역인 듯하다.
옥탑에서 보면 건물사이에 숨은 골목길들이 혈관 같다. 아침이면 주차했던 차와 사람들이 하나 둘 그 길을 빠져나가고, 쓰레기차와 확성기를 튼 물건파는 차들이 지나가고,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빠져나가고 채워지는 분주한 골목 풍경이 새 피로 충전되는 혈관 같아 보였다. 일기예보를 찾아보려다 그만두었다. 때 되면 오겠지 싶어서. 어쩌면 비는 삼킬 때와 쏟아내야 할 때를 이미 터득했거나, 울음을 참고 있는 나처럼 극도의 슬픔을 꾹꾹 누르며 때를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급한 사정이 생겨 호텔에서 지인의 옥탑방으로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붙박이 텔레비전은 케이블을 설치하지 않아 먹통이었다.
뉴스도 끊고 이메일도 열지 않았다. 핸드폰 데이터로 볼 수는 있지만 애써 찾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커서 다른 걸 궁금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냥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다. 살다 보면 피해갈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생각지 않았던 일을 겪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사람이 자기 앞일을 점쟁이처럼 알고 피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때론 정신없이 흔들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으니까.
포기와 적응이 빨라서인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안정되었다. 유배지 같던 공간이 차츰 집이라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앞 건물 옥탑에 사는 아낙이 거기에 일조를 했다.
그녀는 아침 해와 함께 등장한다. 옥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나처럼 옥탑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침이면 화분에 물을 주고 빨래를 널고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곤 한다. 그녀의 옥탑은 바로 밖이지만, 이곳은 옥상을 방처럼 꾸며서 유리문을 열고 나가야 비로서 옥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유리방 안에 놓인 식탁에서 밥을 먹고 고골과 루쉰,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들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어스름 저녁 그녀가 빨래를 거두어 옥탑문을 닫고 들어갈 때도 그곳에 있었고 사위가 어두워져 교회의 빨간 십자가에 불이 켜질 때도 거기 앉아있었다.
바지런하고 생기발랄한 그녀를 보며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 같다. 말은 섞어보지 않았지만,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살아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이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했는데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편안하다. 나는 이 옥탑에서 뜨는 해와 지는 달을 보았고, 오랜 기억을 소환하는 소리를 들었다.
밤이면 집으로 찾아 드는 사람들과 골목에 채워지는 자동차를 보며 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고, 난간에서 불 켜진 수많은 집을 보며 내가 가야할 집과 영원한 집을 생각했다. 이 땅의 집은 본향을 가기 전 잠시 머무는 집일 테니 말이다.
오랫동안 대면하지 못했던 자신과 대화하며 존재와 근원, 관계 그리고 작가로서의 현주소를 생각했다. 내 안의 무엇이 한 뼘 자랐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리라 생각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라는 말씀이 현실로 다가온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더 신중하고 겸손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곳에 왔던 날이 생각난다. 캄캄한 새벽이었다. 건물 6층에 있는 옥탑방에 오르려면 세 개의 문을 지나야 하는데 그때마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키 패드에 번호를 입력했는데 두 번째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전화할 수도 없고 짐은 많은데 문이 열리지 않으니 얼마나 난감하던지. 세 개의 번호를 보다가 숫자 뒤에 별표 하나가 빠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별 하나에 문이 열렸다.
다음날부터 혹여 문이 스르르 닫혀 잠길까 봐 주머니마다 방 번호 적은 쪽지를 넣고 다녔고 바깥세상과 이어줄 유일한 통로인 핸드폰도 화장실까지 들고 다녔다.
주소가 바르지 않으면 집을 찾을 수 없고 한글자만 틀려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기본 상식이 새롭게 와 닿았다. 그걸 잊는 순간 단절과 혼란이 온다는 것도 말이다. 그건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자가격리형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놀고, 늘 바빴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집이라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예쁜 옥탑방이 하나 있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건 착각이었다 장소가 아니라 익숙함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지인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흐린 하늘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분이어서 돌아가시면 너무 슬플 것 같다.
깊은 슬픔이 목젖을 타고 꾸역꾸역 오르는 걸 눌러 삼켰다. 비가 쏟아지길 기다렸다. 같이 울고 싶었으나 울지 못했다. 옥탑에서 내려와 누웠을 때 묵직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오면 어쩌자는 것인지…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이집 주인장이 권해준 아차산 산책로는 가보지 못했다. 다음에 올 기회가 있다면 그땐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따라 천천히 걸어볼 것이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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