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 세월이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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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안 되겠어.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아.” 한 번도 들어보지도 가보지도 않은 곳을 무작정 내비게이션을 따라 달리다 보니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엉뚱한 곳을 향하는 것 같았다. 골라 입은 옷은 날씨에 비해 무거웠고 마음은 거기에 비해 팔랑대기 시작했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 결혼식은 가까운 교회나 호텔이 아니라 시골 목장에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코비드 19로 인해 야외 결혼식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에서 출발할 때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쉬리가 이미 알려줬지만, 한도 끝도 없이 길을 바꾸고 턴을 하는 게 영 불안했다. 남편 전화로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내비게이션 두 개를 켰다. 다행히 식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 없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길이었다. 핸드폰과 내비게이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결혼식은 야외에 마련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생각보다 하객이 많아 북적거렸다. 이런 북적거림 또한 오랜만이라 좋았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만났었는데 이젠 큰일이나 있어야 얼굴을 보게 된다. 지난 두 해 코비드 19로 인해 격조했던 만남이 이젠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요즘 들어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눈물을 흘리곤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훌쩍거리기 일쑤다. 봄이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정도가 좀 심하다. 밝고 씩씩하게 입장하는 신랑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버지 팔을 끼고 입장하는 신부를 보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더니 그냥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닌가. 주책이지. 남들이 보면 친구 딸이 아니라 숨겨둔 딸이라도 시집 보내는 거로 착각하겠다 싶어 민망스러웠다. 26살 신부, 하영이는 못 보던 사이에 키도 크고 늘씬한 게 엄마 아빠 예쁜 곳만 닮아 아주 예쁘게 자라 있었다.
스무 살 무렵 엄마 아빠 도넛 가게에 주말마다 나와 돕는 하영의 모습이 하도 좋아 신랑이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후 7년을 함께하며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사랑의 증표, 반지를 서로에게 끼워주며 사랑을 다짐하는 모습이 마냥 예뻤다. 인연이란 것은 참으로 미묘하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이 틀림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이라고 했다.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은 듯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래, 오늘의 약속을 기억하며 예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평생 한 남자만 보고 살아온 친구는 데이트 신청을 받고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딸에게 여러 사람을 사귀어 보는 것도 좋다고 기꺼이 허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딸도 엄마를 닮아 첫사랑이 맺어지게 되었다며 아쉬움 아닌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들이 결혼했던 쌍팔년도에는 첫사랑과 결혼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특히 이별로 인한 아픔을 모르고 살 수 있다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도 그런 경우가 많은 거 같다. 미국 친구 딸도 고등학교 때 만나 8년 사귄 남자친구랑 얼마 전에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좋아했다. 그 친구 역시 high school sweetheart와 결혼한 케이스이니 알게 모르게 부모의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그 나이에 결혼했다. 심지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첫사랑이었다. 생각해 보면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결혼이란 걸 했다. 그냥 좋아서.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랑을 해서. 그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만 같아서. 철모를 때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들 했지만, 정말 멋모르고 살았다. 나보다 나를 더 믿는 그를 보며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살았던 거 같다.
일주일 후면 결혼 34주년이 된다. 이만큼 살았으니 인생이, 사랑이 뭔지는 알 만도 할 텐데 여전히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리허설인 것 같다. 그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탱탱하고 윤기 흐르던 모습은 간데없고 매일매일 낯설어만 가는 얼굴에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뿐이다.
어제도 그제도 놀랐으니 오늘은 익숙해질 때도 됐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인생인가 보다. 요란했던 우정과 치열했던 사랑, 사랑과 우정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계절이 영원하리라 믿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어느새 호르몬 약을 받아먹고 아이들 혼사에 울고 웃고 부모님들 보내드리는 것이 예사가 된 나이가 되고 말았다.
코비드 19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생각도 못 했던 이발사가 되기도 하고 요리사가 되기도 했다. 이발하러 나서기가 어려워지자 가위를 들고 연구를 했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솜씨로 반백이 되어버린 몇 가닥 남지 않은 남편의 머리를 자르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니 허투루 살은 날은 없었던 거 같다. 참으로 열심히도 살았다.
늘 돌아오는 길은 허전하고 아쉽다. 늦게까지 함께하고 싶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내려 올 생각을 하니 어두워지기 전에 출발하는 게 낫겠다 싶어 친구들과 같이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느새 이런 나이가 된 것이다. 밤새워 놀던 때가 먼 옛날이 아닌 것 같은데 밤길을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헤이 쉬리, 렛스 고 홈!”을 외치고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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