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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두부를 먹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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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 자가격리지 강제감금이나 다름없는 격리소 생활 6일째.
입소할 때만 해도 언제 이곳을 나갈까 싶어 한숨 지었는데, 내일이면 출소다. 멈춘 듯했던 이 공간의 시간도 그럭저럭 공평하게 흘렀던 모양이다.
2020년 4월부터 한국 입국자는 검역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해 입국일로부터 7일을 격리하도록 규정하여 시행 중이다. 작년에 수술하러 왔을 때는 14일간 격리했는데, 지금은 7일이니 그나마 기간이 반으로 줄었다.
내가 아무리 혼자 틀어박혀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자가격리형 인간이라고 해도 한국에서까지 갇혀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격리소에서 한 검사도 음성인데 왜 멀쩡한 사람들을 가둬두는지 이해가 안 된다.
병원 예약만 아니면 격리 면제가 되는 4월에 왔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었다. 기내 풍경은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작년엔 기내식 줄 때를 제외하곤 스튜어디스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땐 사람과 접촉하는 자체가 무섭던 시기여서 나도 일회용 장갑을 끼고 화장실 문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만지곤 했었다. 이제는 기내 서비스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고, 승객들 표정도 경계 모드에서 편한 모드로 바뀌었다.
스튜어디스들도 원래 유니폼에 마스크만 썼다. 더는 온몸을 방호복으로 무장하고 고글 쓴 모습을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여전히 불안한 시국이나 21일부터는 국내 보건소에 접종이력을 등록한 자는 격리를 면제한다는 뉴스가 발표된 후라서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입국절차가 얼마나 까다롭던지 숙소로 가는 버스에 올랐을 땐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공항 내의 상점과 환전을 해주던 간이은행은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고, 화장실은 직원용과 입국자용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외국에서 오는 사람을 여전히 병균 덩어리 취급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볼일이 급했던 한 노인은 화장실 입구에 직원용이라 써진 문구를 보며 몹시 불쾌해하셨다. 비행기 타기 전에 백신접종 카드와 PCR TEST 음성 결과지를 온라인으로 제출했는데도 미덥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국서류도 그랬다. 사전여행허가서(K-ETA)며 입국에 필요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출했고 프린트를 해왔는데도 가는 곳마다 다시 확인했고 숙소에 확인전화까지 했다. 물론 실무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대로 일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닌 것이다.
버스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김포의 한 호텔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임시생활 시설이다. 겉은 멀쩡한데 내부는 망한 호텔처럼 지저분하고 분위기가 썰렁했다.
인터넷은 복장 터지게 느리고, 침구에선 냄새가 나고, 카펫은 얼마나 더러운지 걸을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어났다. 명동에 있는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해본 경험이 있어 애당초 배려나 친절한 서비스는 기대하지 않았다. 매일 식어 빠진 도시락을 주고, 일주일 내내 수건 한 장 갈아주지 않아도 말이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주길 바랐다.
그들이 준 안내문에는 무시무시한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격리장소 무단이탈 등 격리규정을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원 이하의 벌금, 시설 내 공무원과 의료진의 업무집행을 방해하면 징역 5년이나 천만 원 이하의 벌금, 외국인이 격리 규정을 위반하면 강제추방, 재입국 금지” 등이었다.
들어온 날을 입소, 나가는 날을 출소라 부르니 더 감옥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혹, 한국에 아파트라도 하나 사두었다면 이런 곳에 안 왔을까? 가족이 공항에서 와 픽업해가는 사람들을 보며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낮은 산과 물줄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궁금해서 호텔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클릭해보았다. 그곳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그 경치뿐이었다.
그 물줄기는 한강이고 보트가 다니는 쪽이 아라뱃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호텔이 성업 중일 때 다녀간 손님들이 남긴 리뷰를 보니 코로나 19 이전엔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주차장에 발 묶인 보트만 빽빽하게 주차해 있다. 웹사이트에는 임시휴업 중이니 예약하기 전에 호텔에 문의하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휴업이라고, 그럼 이곳에 있는 투숙객들은 뭐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임시휴업이 아니라 임시 업종변경이라고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임시 생활시설로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 19 여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어려움을 겪는 호텔이 많아졌다. 그중 일부는 호텔 전체를 임시 생활시설로 빌려주거나 국내 확진자의 격리장소로 전환해 운영한다고 들었다. 빈 채로 두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돌리는 게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오미크론으로 끝이길 바랐는데, 스텔스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언제쯤에나 이놈의 코로나 19가 종식되어 모든 사람의 일상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제는 일요일이어서였는지 모처럼 보트 두 대가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며 돌아다녔다. 갈매기가 덩달아 날고 물새 우는 소리도 크게 들렸다.
보트는 파킹랏이 아니라 물 위에 떠 있어야 아름답고, 새는 날아야 아름답고, 호텔 수영장엔 사람이 북적거려야 아름답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날들이다.
창문을 여니 찬 바람을 타고 비릿한 물 냄새가 들어왔다. 오늘은 밤과 낮이 같다는 춘분이다. 춘분이 지나면 봄이 시작된다고 했다. 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고 마른 땅에 봄꽃이 피듯 오래 웅크렸던 우리의 일상도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
내일이면 출소다. 실장님이 감옥에서 나오면 두부 드시라고 농담을 하셨다. 이 먼 곳까지 두부 들고 와 줄 사람도 없으니 두부가 든 김치찌개라도 사먹어야겠다. 이 어둑어둑한 호텔도 아마 화려한 날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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