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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스페인 여행기2 (마드리드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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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은 마드리드 왕궁과, 프라도 미술관, 이층짜리 시내 관광버스 타보기로 했다.
아침은 마드리드 왕궁 가는 길에 있는 브런치식당에서 먹었다.
스페인 오믈렛과 커피를 시켰는데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너무 진했고, 오믈렛은 감자 파이 같았다. 나중에 좀 연한 커피를 주문했더니 그건 너무 미지근해서 결국 마음에 드는 아메리카노는 스타벅스에서 사 먹기로 했다.
마드리드 왕궁은 파리의 베르사이유에 비하면 규모는 좀 작은 편이었는데, 왕궁실내는 만만치 않았다.
요즘은 관광지도 거의 가이드 투어가 대세인데, 시간 맞추기가 힘든 경우, 오디오를 빌려 해설을 들으면 된다.
또한 웬만한 곳은 한국어도 다 구비되어 있는 편이다. 유럽의 왕궁은 어딜 가나 그들의 제국 전성기때 수탈한 금은으로 치장해 놓은 것은 비슷한데 그나마 마드리드왕궁은 좀 덜한 편인 것 같았다.
역사를 보니, 나중에 프랑스왕족이 스페인 왕가를 이어받아 스페인 국민들이 새로 왕궁을 짓는데 덜 협조적이었다 한다.
유럽의 왕가는 하나의 대륙 안에서 정략적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가 많아 핏줄을 따지면 모두 섞여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마드리드왕궁에서 3시간 정도를 보내고 나니 좀 신선한 공기를 쐬고 싶었다. 하여 이층버스를 먼저 탔는데, 나중에 보니 이건 결정적인 실수였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한 곳인 프라도를 어찌 두 세 시간 내에 볼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나중에 보니 이 미술관만 제대로 보려 해도 최소한 3일은 걸릴 것 같았다. 소장 규모와 작품들을 보면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다.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 베르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의 대표작들이 거의 다 있고, 시대별, 작가별로 전시해 놓은 성화(聖畫)들은 작품 수가 너무 많아 전 세계 성화들을 다 모아 놓은 것만 같다.
보고 싶은 작품의 번호를 미리 알아서 집중적으로 찾아보지 않은 한, 그 안에서 길을 헤매기 딱 십상인 구조로 되어있다.
아쉽게도 보고 싶었던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성 소피아 뮤지엄으로 옮겨가고 없었다. 우리는 5시 30분경에 뮤지엄에 도착했는데 특별전을 보는 바람에 더더욱 콜렉션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 특별전은 다름 아닌 그림의 뒷면을 전시하는 참 특이한 전시였다.
감상자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기 위해서 라는데, 과연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뒷면만 보이니 앞면에는 어떤 그림이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많이 일었다. 어떤 그림의 경우는 반대쪽에 있는 그림의 앞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 세계적인 뮤지엄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오후 6시 이후에는 아무나 무료관람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뮤지엄 입구에는 긴 줄이 하염없이 서 있었다. 퇴근길에 좋아하는 그림을 무료 관람하는 마드리드 시민들이 부러웠다. 이런 걸 보면 한 나라 국민의 문화적 소양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많이 접촉할 수 있는 빈도와 맞먹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에 대한 자극이 일상화된 도시에 수 많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첨단기술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해도, 아직까지 그림이나 글 같은 분야는 인공로봇이 따라 할 수 없다.
흉내는 내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성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이 정형화 할 수 없는 세계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지 않을까….
이날이 마침 작은 아이 생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검색을 해보니 가까운 곳에 한 군데가 있었다. 잡채와 불고기, 순두부찌개를 시켰는데, 젊은 주인아줌마가 요리를 하고, 사장인 아저씨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저녁을 먹다 우리는 주인아저씨에게 툴레도와 바르셀로나에 대해 물어보았다. 마침 우리는 마드리드에 며칠 더 머물면서 주변의 툴레도나 세고비야를 갈 것인지, 아님 바르셀로나에 가서 가우디성당을 볼 것 인지를 놓고 작은 의견차이가 있었다.
스페인에 산지 20년이 넘었다는 식당주인은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 가는 걸 추천했다. 사실 그곳이 아니라도 스페인은 참으로 가볼 곳이 많다.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궁전,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도시 세르비야, 툴레도 등등, 최소한 한 달은 걸려야 천천히 다 볼 수 있는 곳들이다. 역사가 우리나라처럼 오래 되기도 했거니와, 오랫동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어서 아라비안적인 색채가 짙은 곳도 많다.
저녁을 먹고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갔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작은 무대가 준비되어 있고, 무대를 중심으로 가까운 테이블은 저녁식사까지 겸한 테이블이다.
당연히 입장료가 비싸고, 우리 테이블은 무대 오른쪽 옆이었다. 난 단순히 극장으로 생각을 해서 식사를 하고 간 것이었는데 무대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니, 무희의 발자국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간간히 중앙에 앉은 노가수가 내지르는 노래는 우리나라 남도창처럼 한이 서려있는 것 같다. 쿵 쿵 쿵 무대를 사정없이 찍어 누르는 플라멩고 무희의 동작은 말 보다 더 힘이 있다.
세 명의 무희가 번 갈아가면서 땀을 흠뻑 흘리며 추는 춤은 밤이 깊어도 끝날 줄을 모른다. 우리가 일어설 때쯤 엔 샹그리아의 얼음이 다 녹아있었다.
밤늦은 마드리드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맥주를 파는 펍이나 바도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다.
서울 외에는 이런 도시를 본 적이 없는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좋다. 한국의 건축가가 휴스턴을 방문하며 낮에도 텅 빈 도심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이 도시는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위하여 설계된 도시 같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미국에 살면서 밤에 다닐 수 있었던 도시는 세 군데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번은 뉴욕에서 문인들과 함께 맨하탄 부근 밤거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홈리스가 줄줄 따라오며 이상한 몸짓을 하는 걸 보고 기겁해서 숙소까지 뛰어갔던 적도 있다.
여러 명이 갔는데도 겁이 났다. 일단 미국 도시의 다운타운은 위험하다. 밤이 되면 더욱 더 위험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도 걸어서 호텔까지 무사히 왔다. 1리터짜리 물 두 병을 사가지고 말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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