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 문화산책_시인의 작은 窓] ‘디지털 고려장’과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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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6시. 아침이 열리기 전. 희뿌연 구름사이를 하현달이 들고나며 간다. 가만히 서서 보는데도 하얗게 맑은 달 혼자서 하늘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다.
‘21년 막달과 새해 첫날의 배톤 터치를 축하하려는 걸까. 초여름 같은 기온에 앞뜰의 철쭉과 희고 붉은 장미꽃들이 기분대로 꽃을 피워낸다. 계절이 겨울인데 눈치도 없다.
뒷마당 아름드리 피칸나무가 지난 이월 ‘텍사스 빙하기’인 스노우스톰을 견뎌내더니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온 동네 새와 다람쥐들의 먹방이 되었다.
유난히 곱던 가을 잎들을 모두 떨구어 낸 배롱나무들. 푸르게 투명한 하늘에, 생명의 통로였던 잔가지들이 선명해서 나무의 엑스레이를 보는 듯하다. 자연의 순리대로 치장을 벗어버리고 그 모든 사연 훌훌 털어 맨몸으로 겨울을 마주하는 나무는, 순수한 어린이가 된다.
코비드 19 때문에 두 해만에 참석한 달라스 목사회, 오미크론으로 아직도 마스크를 썼지만 많이 반가웠다. 설교하신 A 목사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의 길에 가까운 줄 알았다고 했다.
“양을 위해 죽는다”는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보는 순간! 자식을 위한 죽음이라도 순간 망설일 텐데 네가 교인들을 위해 죽을 수 있니? 선한목자는 커녕 삯군에 더 가까운 거 아니야?
신학공부 하러 미국 왔는데 ‘청소꾼이 없어서 밤청소꾼’을 만드셨냐고 투정했던 세월들. 분명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지만 잘 된 것을 축하하면서도 비참해지던 비교의식.
결국 ‘인내의 기도’보다 ‘사람의 방법’을 썼던 아픈 기억들. 그러나 요즘은 감사하다. 역시 이민목회는 좁은 길이요, 한 성도만을 위해서라도 설교하고 죽을 수 있다면 주님을 위한 길이요, 좀 더 선한목자에 가까운 길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이민목회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셨다.
3-4년 전에는 새해 달력에 특별한 날마다 동그라미를 쳤는데 벌써 구식이 되었다. 폰의 달력에 기록해 놓으면 당일 아침에 알려주는 ‘폰 달력비서’ 때문이다.
폰의 AI, 인공지능 비서인 빅스비, 오케이 구글, 시리, 아리아, 알렉사 등은 자유롭게 부릴 기술이 없어 아직 주저된다. 딸과 함께 살면서 늘 딸에게 배우는 80세의 ‘작은둥지’ 손님이 폰의 ‘시리’를 불러서 스케줄 예약을 명령(부탁)했다.
몇 번을 해도 안 되자 불평을 했더니 “You shouldn’t talk to me like that(당신은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돼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인공지능 비서도 감정이 있나? 어이 없는 당황스러움도 잠시 기가 막혀 둘이 서로 보고 웃었다.
김동식님의 ‘회색인간’, ‘디지털 고려장’이 2017년 책으로 출간되었다. ‘노정태 시사哲’의 기사는 ‘디지털 고려장’으로 떠밀려가는 노인들에 대해 201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더 나쁜 건 그 모든 절차를 인터넷을 통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수로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노인에게 공무원들은 냉랭하고 고압적이다.
“디지털 시대잖아요. 인터넷에 나와요. 예약 없이 오셨으면 이만 가주세요.” 디지털 격차로 인해 소외당한 ‘디지털 디바이드’의 상황이다.
자녀들이 멀리 사는 7-80대의 백인들도 ‘폰 텍스트’조차 못하는 분들이 있다.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배우지 않으면, 또 가까이 살지 않아 배울 수 없으면 ‘디지털 고려장’이 될 판이다.
특히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전화를 해도 온라인 주소만 들려준다. 병원예약, 백신예약, 실업수당 신청을 하려면 인터넷상의 주소인 웹사이트에 들어가야만 한다.
가 본적 없고 보이지도 않는 길. 아이나 젊은이에게는 너무 쉬운 길. 돋보기를 고쳐 쓰고 익숙하지 않은 영어 알파벳과 부호를 정확하게 쳐야만 백신예약을 할 수 있었다.
이정표도 없는 인터넷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가 어찌어찌 예약하고 백신 맞고 부스터 확인증까지 ‘증명서 3개’를 받은 2021년이었다.
이스라엘 사는 이모가 아파서 갔던 유대인 친구는 ‘부스터증’이 없어 텔아비브 공항에서 5시간 만에 강제추방 당했다. 이모 얼굴도 못 보고 24시간 여행길과 경비를 날려버렸다.
“미리 학인하지 그랬어~” “인터넷 확인이 복잡했어. 딸은 바쁘다고 안 해주고…” 새해에 크루즈를 간다기에 ‘디지털 고려장’ 설명은 차마 못하고 “이번엔 잘 확인하고 갈 꺼지?!” 토닥여주었다.
“성경은 글이 아니라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길을 좇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예레미야 애가 3:33 말씀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로다”라고 했다. 본심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앞으로 펼쳐질 새 해, 새 길을 묵상하며 시편기자의 고백에 위로와 힘을 얻는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 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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