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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짧은 글 릴레이 ] 김수자 에세이 - ‘헛수고’도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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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152회 작성일 22-02-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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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너싱홈(Nursing Home)으로 설교를 하러 간다며 동행하자고 해서 간 적이 있다. 와이키키 앞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조용하고 조경이 잘 되어있어 자녀들이 찾아오기 좋게 만들었다며 한달 비용이 5천달러라고 목사님이 넌지시 알려주었다. 

 

시간이 되자 레크레이션 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모여드는 것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휠체어 나라에 온 듯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이상 할 정도였다. 

한국 목사님의 영어 설교가 썩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어찌나 진지한 모습인지 볼펜 하나 떨어뜨리면 안될 성싶었다. 찬송가를 부를 때는 손뼉을 치는 사람, 다리를 까닥거리는 사람,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 등등 제 각기 표현을 했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99세 한국 할머니의 방으로 갔다. 해맑은 웃음을 띠고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목사님이 침대를 ㄴ자로 만들어 할머니를 일으키자 ‘반가워요, 반가워요’하며 눈가에 눈물까지 보이셨다. 이가 하나도 없어서 아기 같았다. 냅킨으로 눈물을 닦아드리는데 갑자기 와락 내 손을 잡았다. 

그 가늘고 앙상한 뼈다귀만 남은 손의 힘이 어찌나 센지 손을 빼기가 힘들었다. 이 분은 2명의 자식이 있는데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한 두 달 기분 좋은 곳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시게 하려고 이곳에 모셨는데 5년이나 계시어 요새는 면회도 안 온단다. 

 

테라스에는 어느 할머니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앉아 계셨다. 그 분은 해만 뜨면 나와 계신다고 했는데 잠들었나 싶어서 휠체어를 옮기려고 하면 “Leave me alone” 하면서 손도 못 대게 한단다. 왼종일 햇볕을 쬐며 나른한 잠에 빠져드는 그 행복을  아무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거실 한 귀퉁이에서 뜨개질을 하는 분이 계셨다. 무엇을 만드세요 했더니 그냥 웃으신다. 간호 보조인이 그 분은 아침에 뜨개질을 시작하여 저녁까지 아주 긴 목도리를 만드시는데 해가 지면 반드시 죄다 풀어서 똘똘 뭉쳐 놓는다고. 다음날 아침에 새로 뜨개질을 시작한단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아침에 뜨게질을 시작하고 저녁에 풀고 다음날 또 시작하고 저녁에 풀고… 혹 실이 없어서 그럴까요? 아니요, 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냥 그런 작업을 하시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자주색 베레모를 쓴 어떤 할아버지도 있었다. 자못 화가가 된 양 폼을 잡고 풍차가 있는 풍경화에 퍼즐을 맟추고 있었다. 이 할아버지도 기껏 완성한 다음에는 순식간에 흩어 버린단다. 

 

원시불교 이야기에 치성인(痴聖人)이야기가 있다. 이 치성인은 매일 눈을 한 삼태기씩 퍼서 우물에 쏟아 넣는게 일이었다. 눈을 우물에 쳐넣어봤자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기만 하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끊임없는 그의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 먹고 자고 일하고 애 낳고 하는 모든 행위가 한낱 우물 속의 눈 같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헛된 짓을 하는 인간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치성인이라고 불렀다.

서양에도 이런 얼빠진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 이야기다. 시지프스는 잘난 체하고 오만하고 간교해서 최고 신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는데,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 정상으로 굴려 올려야 하고, 그 돌이 밑으로 굴러 내려가면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이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트 카뮈는 그의 책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밀어 올린 돌이 떨어질 줄 알고도 굴렸을 것이며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리려는 모습은 인간승리를 뜻한다고 했다. 알베르트 카뮈는 시지프스의 수고에 대해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스를 마음 속에 그리자”고 했다. 그러면서 카뮈는 시지프스의 이러한 행위를 부조리라고 평가했다. 

 

카뮈나 치성인이나 사람들은 헛수고만 한다는 자각이었는데, 그 헛수고가 사람의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판에 박은 듯한 일상이 짜증이 나고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쌓이지만, 사실은 그 일상에 행복과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매일 눈을 삼태기에 나르는 치성인도 힘들게 돌을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도 반복되는 그 일 자체에 재미와 흥미를 느꼈으리라는 평가에서 우리는 긍정을 느낀다.

 

그날 시지프스의 후예 같기도 하고 치성인의 제자 같기도 한 너싱홈의 시니어들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았다. 

절망은커녕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우리의 삶이, 그 일상들이, 사실은 행복과 재미를 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삶을 이어가는 주체가 된다는 심오한 학습을 한 느낌이었다.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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