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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 문화산책 ] 가을에 젖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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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524회 작성일 21-11-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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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뜰과 뒤뜰에 가을이 가득하다. 주차장에 떨어져 마른 잎들이 여린 바람에도 사그르르 몰려다니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나보다.

 

 달빛 타고 처마 밑에 내린 붉은 나뭇잎 

 철모르는 풀잎위에 살며시 앉아서 

 튼실한 씨 맺으라고 새벽잠 깨웁니다

 

 오솔길에 살풋 앉은 붉게 물든 나뭇잎 

 풀꽃마다 이슬단장 시키는 달님에게

 이제는 그만 쉬라고 손 흔들고 갑니다 

 

 김정숙, 동시조 ‘붉게 물든 나뭇잎’ 전문   

 

 11월은 계절이 가을이지만 절기로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있다. 한국에서는 음력 기준에 따른 양력으로 11월 7일이 추운 겨울에 접어든다는 ‘입동’이었다. 

또 11월 22일은 많은 양이 아니지만 눈이 온다는 ‘소설’이다. 우리와 절기에 따른 기후가 다르지만 달라스에도 꽃이 피고 지고 열매 맺는 사계절이 있고 가을에 젖도록 고운 단풍들이 고맙다. 

 

 몇 해 전부터 지인댁 감나무에 달린 감이 가지채로 가을의 행복을 안겨주었다. 

올해도 하나같이 튼실한 감을 주렁주렁 단 감가지가 현관문 포치에 걸려 있었다. 두 손으로 겨우 들 정도의 무겁고 큰 가지 두개를 초록 끈까지 준비해서 매달아놓으신 꼼꼼한 정성! 별로 잘 해드린 것도 없어 부끄럽고, 감사하다. 

차에서 내리는데 보름달덩이 같은 감들이 먼저 눈에 띈다. 꽃처럼 곱게 단풍든 빨간 잎과 아직도 청춘인 듯 푸른 잎, 게다가 막둥이 잎처럼 여린 잎들까지 싱싱하게 감싸고 있다. 

달라스의 고은 노을빛 닮은 ‘빅맥’ 크기의 최 우량품 감들! 어찌 이리 탐스럽고 아름다울까. 담장이 무너질까 걱정될 정도로 주렁주렁 감이 달린 감나무 사진을 보내셔서 ‘작은 둥지’ 손님에게 보여주었다. “달라스에 사는 분이 맞느냐”면서 어찌 키웠느냐고 감탄을 연발하며 구글 검색으로 영양가까지 챙겨 읽어준다.

 

 10월 초에 진순을 보내고 뒷마당에 가기 싫었다. 그러다보니 야채밭이 거의 폐농이 되었다. 

파머스 브렌치로 이사 온 후 농부가 된 남편은 부지런히 체리, 라임, 무화과, 배, 백도, 천도, 포도, 단감, 홍시감, 대추 까지 골고루 심었다. 

올해는 풋대추 대 여섯 개 겨우 맛보았을 뿐, 블루제이, 모킹버드 등의 새들과 다람쥐들이 싹쓸이 했다. 그나마 작년에는 ‘가을나이 진순’ 덕에 단감 몇 개를 거두었지만 올해는 ‘완전노인 진순’을 영악한 새들과 다람쥐들이 모를 리 없잖은가. 

다람쥐와 새 쫓는 산탄총도 도심지에서는 불법이란다. “죽 쒀서 개준다”는 속담도 생각나고 노동의 대가와 물 값 등 본전생각이 나서 씁쓸했다. 

거름을 차로 사다 넣으며 10여 년 간 옥토를 만들어 과실수를 심었고 열매를 넉넉히 거둘 때가 되었나 싶었는데 ‘동식물 자연보호 우등생’이 된 셈이다. 수명 다 해 떠났지만 우리 진돗개들, 화랑, 진돌, 진순이 그립다.

 

지구촌에 재난과 역병이 기승을 부려도 산자는 살아남듯 바람 따라 와서 뿌리내린 해바라기가 여름내 꽃을 피우다가 말라버렸다. 

태풍이 몰아치자 굽어지고 휘어지고 꺾이고, 볼품이 없어도 힘들게 살아낸 삶이 대견했다. 씨라도 익으라고 지저분해도 그냥 두었다. 

비 온 후 부러지고 휘어진 가지에서 곁가지, 거기서 또 잔가지에 몇 개의 초록 잎이 나더니 그 사이에서 아기 손바닥 같은 막둥이 작은 꽃을 피어냈다. 

우람한 레드오크트리 가지 사이로 찾아주는 햇살 덕에 루비처럼 새빨간 보석을 촘촘히 달고 뽐내는 난디나 열매와 어울려서 황금빛을 자랑하다니! 멋지다. 이제 곧 씨가 익고 또 어디로든 가서 정착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겠지.

 

덕분에 가을에 젖어서, 30여년 이민자의 세월을 돌아본다. 해바라기 같다고 할까. 나름대로  주님만 보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태풍, 폭우, 폭염, 한파, 토네이도를 겪으며 휘어지고 꺾일 듯 아슬아슬한 적도 있었다. 그 분의 말씀 밭에 뿌리 내린 삶을 살아내려고 가지치기도 당하며 잘린 가지에 아파하기도 했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심이 감사하다,

그런데 이 추수의 계절에 나의 영적 밭에는 어떤 열매가 얼마나 맺혔을까? 

지인 댁의 튼실한 감나무처럼 그분이 행복해 하실 열매를 맺은 거야?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아직도 씨를 맺지 못한 부분들이, 열매 맺지 못할 언행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씨 맺을 계절인줄 모르는 철모르는 풀포기처럼 살지는 않았을까? 

풀포기를 깨우쳐주는 가을 잎에게서 배우며 마른가지의 늦둥이 해바라기처럼 ‘늦지 않았어!’ 다시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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