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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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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556회 작성일 21-09-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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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얼마 전 은행으로부터 8월 20일 이후로는 체크업무를 중단할 예정이니, 앞으로는 체크를 사용하지 말 것을 알리는 공문이 인터넷 뱅크 사이트에 떴다. 

뭐든 공문에는 복종적인 남편은 이제 앞으로 체크를 사용할 일이 없으니, 집에 남아있는 세 상자 정도의 사용하지 않은 새 체크는 다 불태우고, 이제 정말 지불할 것은 무엇이든 인터넷 뱅킹를 이용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각종 공과금은 모두 인터넷 뱅킹을 이용했고, 기껏 체크를 사용할 일은 일회성 비용이나 병원비, 아니면 잡지를 오더할 때나 1년에 한 두 번 푸드뱅크 같은 곳에 기부를 할 때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래도 막상 체크사용이 중단된다면 불편할 일이 꽤 많을 것 같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은행에서 뉴스보도도 없이 이런 업무를 중단하나 싶어 은행엘 직접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공문은 세이빙스 어카운트로 체크를 사용하는 일부 고객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는데, 아무튼 이 해프닝을 계기로 지난 몇 년 사이에 제도가 변경되거나, 기존의 서비스가 사라진 분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인터넷 서비스로 모든 일이 처리되는 까닭에 우표 살 일이 없어지고, 네비게이션이 발달하면서 지도는 이제 거의 지나간 유물이 되었다. 물론 처음 간 관광지에 가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비지터 센터에 가면 거의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체크북 역시 인터넷 뱅킹이 시작되기 전에는 주기적으로 주문하던 물품 중 하나였다. 한때는 꽃문양이나 갖가지 새가 그려진 예쁜 체크북을 주문해서 어울리는 커버에 넣어 핸드백안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샤핑을 할 때 쓸수 있는 금액의 한도는 그 사람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고, 부부이름이 함께 들어있는 체크는 안정된 결혼생활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미국에 와서 맨 처음 배운 것이 운전 다음으로 체크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체크에 들어갈 사인 연습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외려 샤핑을 체크로 하는 사람을 보면 19세기 사람을 보는 것처럼 생경하다. 

이런 현상은 몇 년 사이에 나타났는데, 집전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핸드폰이 나오면서 필요성이 줄어들어 요즘은 집전화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우리도 얼마 전에 집전화를 없앴는데 생활의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단지 각 방마다 연결된 집 전화기 코드를 빼면서, 우리에게 소중했던 물건들이 소용 없어짐에 대해 왠지 모르게 추억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물건에는 사용하던 사람의 역사가 숨어있다. 아이들이 쓰던 방에 가면  비디오테잎 플레이어가 부착된 화면이 볼록 튀어나온 티브이와 닌텐도 게임기가 있다.

아이들은 그 티브이로 주말이면 팝콘을 먹으며 만화영화를 보고, 닌텐도 게임을 했다. 

책상서랍을 뒤져보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계산기가 나오고, 포키먼 카드를 모아둔 앨범도 보인다. 

얼마 전 아들은 포키먼 카드 희귀본은 상당한 가격이라면 잘 보관해두라는 당부를 했다.

서재에는 복사 잉크가 비싸서 프린터기가 필요할 때 마다 몇 십 불씩 주고 샀던 프린터기가 몇 개나 있고, 오래된 랩탑도 그대로 있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라디오도 있었는데 동네 거라지 세일에 멕시코 할머니에게 팔고나선 후회가 됐다. 

밭에서 잡초를 뽑을 때 그만한 것이 없는데 지금은 사려고 해도 나오지 않아 살 수가 없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만, 크게 들으려면 블루투스를 따로 사용해야 하고, 광고도 많아 라디오만 못하다.  

 

소위 레트로에 나는 약한 편이다. 앤틱 샵 가는 것을 좋아하고, 옛날 물건들을 보면 한 없이 정감이 간다. 

그 덕분에 큰아이 방 침대 헤드보드는 앤틱 샵에서 산 100년쯤 된 것인데, 뭐가 잘못됐는지 눕기만 하면 삐걱거린다. 

아이는 제 취향과 상관없이 제방을 온통 옛날 물건으로 도배해도 말없이 웃고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이 좀 든다. 

한 번은 콜로라도 탄광촌 고스트 타운에서 주운 신발 한 짝을 집까지 가져온 적도 있다. 

무슨 역사적 사료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싶은데, 아무튼 그 신발이 탄광촌 광부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물건인 것만은 확실하다. 

무엇이든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게 미덕인 이곳에서, 그래도 쉽게 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빠르게 변하고 바꾸는 만큼, 그 만큼 행복해졌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의식주를 손수 해결하고 살았던, 불편을 감수했던 사람들의 행복도가 훨씬 높다고 한다.

 

안톤 슈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슬픔을 빛나는 감성으로 노래했다.

“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음악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달리는 기차의 불밝은 차장에 앉아있던 미소가 어여쁜 여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을 때 느끼는 슬픔, 사랑하는 아들아!”로 시작되는 편지 등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대부분이다. 

그 중 지금은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양광이 비칠 때’ 이다. 현 세대는 어느 세대 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는 세대가 아닌가 싶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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