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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우리는 스파이였다” 한국전쟁의 잊혀진 영웅들, 여성첩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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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760회 작성일 21-06-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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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올해가 6·2 5전쟁 71주년이네요. 기억나셔요? 아주 오래 전에 무공훈장을 받으신 고모가 대통령 하사품인 손목시계를 엄마에게 주셨더군요. 봉황과 태극기가 인쇄된 시계판을 보여주며 엄마가 자랑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해마다 6월, 보훈의 달이면 ‘어둠과 빛으로 버무려진 친정의 가족사’에서 어린 제게 가장 큰 의문은 고모! 전쟁 때의 고모에 대해 어른들도 잘 모르겠다니 당사자인 고모에게 직접 여쭐 수도 없었지요. 

성장해서는 각자 살기 바빴고 특히 세월과 함께 묻혀가고 잊혀가는 6·25 전쟁이기에 그냥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마음 한편에 묻어뒀습니다.

그런데 90년 초, 가족이민을 오고난 후 고모이야기가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방영되었다고 하더군요. 문화방송에 이메일로 문의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마음 한구석 찜찜하고 궁금했지요. 훈장을 받았으면 좋은 일 일텐데… 

제가 아는 고모는 약국주인으로 자녀들을 키우며, 그 후 한의사까지 된 진취적이고, 푼수 없이 인정 많고, 그릇이 큰 여장부이셨거든요.  

 

결국 구글 검색으로 ‘6·25 전쟁 여군참전사 국방부 군사편찬 연구소’에서 KLO(Korea Liaison Office)와 TLO(Tactical Liaison Office)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KLO(Rabbit 포함)는 인천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적 후방으로 많은 첩보원을 파견하여 적의 병력, 장비규모, 보급현황 및 이동사항, 사기, 민심, 기상 등을 파악하여 유엔군 측에 제공하였다. 또한 역     (逆) 정보유포, 적 병력과 군사시설에 대한 항공폭격유도, 귀순공작, 기밀문서탈취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극동군사령부 연락단은 TLO를 조직하여 전선의 미보병사단과 영국군 여단 및 한국군 군단에 파견, 첩보수집활동을 수행하도록 했다. TLO 한 팀마다 한국인대원 20,30명에 3-4명의 여성들이 포함되었고 TLO의 여성대원으로는 김병직… 등 30여명…”

드디어 찾은 성함, 김병직! 무척 반가웠지요. J고녀 졸업생이라는 고모는 한국 여성 첩보대원으로 미군 소속이셨더군요. 얼핏 듣기는 간호장교로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아 상이군인이 되셨다고 했는데, 첩보대원, 여자 스파이였다는 것이 어른들께는 불편한 진실이었나 봅니다.

 

사촌오빠가 보내주신 You Tube. “암호명 Rabbit, 우리는 스파이였다”-한국전쟁의 잊혀진 영웅들 여성첩보원들의 이야기(2020. 8. 28)” 동영상을 열자 “한국전은 스파이전! 중공군과 북한군 작전 참모들에게 깊이 침투해 중요한 정보를 빼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던 한국판 마타하리였다…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순결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울컥하며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숨은 주역이 그들이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다.” 귀한 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마음조이며 보는데 당시 8240(KLO) 특수대원이었던 김상기 님이 “김병직 특수공작대 요원은 미3사단에 배속된 TLO 요원으로 적 후방으로 침투, 적정을 살피고 적진배치 등을 첩보하는 역할을 했다”는 고모에 대한 증언에 놀랐습니다. 

또 직접 방문해 20년 만의 반가운 해후를 하셨더군요. 목소리와 얼굴모습, 행동까지 미국 오기 전에 제가 뵙던 때의 모습 그대로여서 많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그 동영상에서 공개하신, 50년 지나도록 참담한 흉터들과 고모의 육성으로 처음 듣는 이야기, “기는 것, 산을 넘는 것 등 혹독한 훈련, 붙들리면 자살하라, 고지 높은 데로 올라가서 떨어져 죽어야지 잡히면 안 된다, 권총은 다리에 차고 인민군 복장으로 모처에서 우리 대원을 만나라, 모처에 가면 무언가를 줄 것이다. 받아가지고 와라” (몇 번의 작전성공 후) 앞서가던 여자대원이 지뢰를 밟아 그 분은 전사하고 고모는 지뢰 파편을 온몸에 맞고 창자가 쏟아지고, (구조 후)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고 했습니다. 1월 29일(1951년) 아주 많이 고통스러워 밤이 너무 길더라는 이야기. 그래도 살아주셨음에 감사했습니다. 

 

다큐 방영 5년 후 고모가 돌아가시자 태극기를 가져 온 보훈처사람이 화장해서 국립묘지로 모시겠느냐고 물었다고 해요. 화장을 싫어하신 고모. ‘포탄에 죽는 것 같은 화장’이 끔찍하게 싫으셨을 테지요. ‘천주교 공원묘지’에 태극기와 함께 흉터투성이의 몸을 누이셨습니다. 

동영상 마지막부분에서 다시 뵙는 고모의 모습, 방안의 기도처, 성모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편하고 따듯한 모습의 옆얼굴! 그렇게 편안히 기도하며 떠나셨겠지요. 

 

고모! 이 땅 여전사들의 숭고한 희생은, 참전했던 ‘마이클 이하스’ 대령에 의해 ‘아폴로스 워리어-데블쉐도우’로 미국에서 발간된 것이 동영상에 있더군요. 또 여전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직접 취재하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2001년 KBS에서 최초로 공개했던 분이 모두 프로덕션의 김병협 대표였습니다.

그는 정보기관에서 우연히 ‘래빗 활약’을 듣고 취재를 시작했지만, 당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비밀로 수행이 됐고 생존자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미국의 21세기 폭스에서 영화제작제안을 받았지만 진행이 늦어져 무산되고 국내에서는 3부작드라마로 제작하려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의한 사회적인 상황 등으로 물거품이 됐다니 아쉬웠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름도 없이 스러져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된 여성 특수 첩보요원들! 더 이상 대한민국 땅에서 전쟁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 지구에 평화를 주소서!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미가 4:3)*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 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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