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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로빈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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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950회 작성일 21-05-0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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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가장자리 아래로 한껏 내려잡았다고는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쏟아져나오는 푸른 빛을 감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잠 들었겠지, 김 선생은 곁눈질로 돌아누운 아내를 일별하고는 얼른 반대편 눈동자를 스마트폰으로 내리꽂았다. 

액정에서는 숫자가 11.87021, 21.36954, 11.04782, 그러는가 싶더니 단번에 10.59002로 내려앉고 있었다. 

가슴이 뛰고 뒷골이 당겼다. 10달러 선도 무너지나? 김 선생의 방정맞은 생각은 여지없이 현실로 나타났다.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푸른 화면에 찍힌 숫자가 슬랏 머신처럼 팽글 돌아가더니 9.85027! 정확하게 반 토막이 났다.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김 선생은 들고 있던 전화기를 던져버렸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썼다. 

마누라 말대로 아마존이나 몇 주 더 사고 말 것을 어쩌자고 알트코인에 손을 대서 이런 낭패를 겪는가. 김 선생은 이불이 떠들리도록 한숨을 내쉬며 자책했다.    

 

“손 씻고 와요.”

자는 줄 알았던 마누라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날아왔다. 놀란 가슴이 마구 벌렁거렸지만 김 선생은 태연한 척 “샤워 했는데 뭔 손을 또…” 하고 우물거렸다. 

“전화기 만졌잖아!”

갑자기 마누라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날아왔다. 화들짝 놀란 김 선생은 둘러썼던 이불을 걷어 젖히고 벌떡 일어났다.

‘저 여편네가 다 알고 있구나, 허 참,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어찌할 바를 잊어버린 김 선생이 마누라 말 대로 손이라도 씻어볼 요량으로 침대를 내려서는 데 발바닥에 무엇이 밟혔다. 

방금 전에 내던진 전화기였다. 김 선생은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집어들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로빈후드’라는 주식중계소 서버에 계정을 만들고 첫 거래로 애플주식 500주를 살 때만 해도 김 선생은 세상을 다 갖은 듯 배가 불렀다. 

그리고 얼마 후 스탁 마켓에서 가장 비싼 아마존 주식 20주를 매입했을 때는 마치 백만장자가 된 것처럼 기고만장했다. 아내에게 큰소리 뻥뻥 치며 노후자금을 몽땅 털어넣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중세영국의 의적 로빈 후드의 모자 뒤편에 꽂힌 깃털장식의 회사로고가, 초록바탕 상단에 연두색깃 털 하나가 화살처럼 떠있는 그 모양이 더 없이 상큼하고 믿음직했다. 

옛날 로빈 후드가 성주, 왕족,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듯이, 김 선생 자신에게도 큰 재물을 안겨주리라는 희망에 들떠 장세에 큰 변화가 없는 데도 시간이 멀다하고 서버를 클릭했다. 

 처음 한동안은 주당 1~2달러의 변화에도 희비를 교차하며 흥분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 소폭의 등락만을 거듭하자 마음이 시들해져버렸다. 기대만큼 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마침 중학교 동창 단톡방에서 비트코인이 화제였다. K는 돈벼락을 맞고, L은 쪽박을 찼다며 그 원인과 이유와 해법을 찾는 글로 도배를 했다. 

그렇게 설왕설래하다가 끝판으로 가면 으레 ‘아이고, 흥한 놈이건 망한 놈이건 그 녀석들은 비트코인 살 재력이라도 있잖아, 나는 그거 반 개 살 능력도 없으니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라고 푸념을 늘어놓기 마련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알트코인 정보를 퍼 날랐는데, 적은 자본으로 큰 수익을 낸다는 달콤한 유혹에 김 선생의 마음이 홀라당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

 김 선생도 나름 알트코인에 대한 연구를 단단히 한 후, 확신이 섰기에 달려든 일이었다. SNS를 들락거리며 가상화폐 전문 유투버들의 시장분석과 전망을 바탕으로 Q 코인에 올인한 것이다. 

처음에는 전문 분석가의 예상대로 수익이 팍팍 올랐다. 주식과 코인에 빠진 젊은이들이 밤잠을 설쳐서 빨간 토끼눈으로 출근을 한다는 한국 뉴스에 헛웃음을 쳤던 김 선생이 어느덧 자신도 그 꼴이 되어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 애플주식 절반을 팔아 산 Q 코인 1,500개가 하룻밤 자고나면 사 5,000러씩 늘어나는 것이었다. 

 ‘옳다, 됐구나, 잘만 하면 내년에 은퇴하고 마우이 해변에 콘도 하나 장만할 수 있겠다!’ 

김 선생은 그런 희망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삼일 치솟던 상승세가 갑자기 꺾일 때만해도 ‘걱정할 것 없어, 너무 올랐으니까 조정기에 들어가는 것이야’ 하며 느긋했다. 

그런데 그 떨어지는 추세가 멈추질 않았다. ‘어허, 어’ 하는 사이에 올랐던 것을 싹 털어내더니 급기야 오늘밤 원금까지 반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변기에 걸터앉은 김 선생은 넋 나간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곤두박질치던 숫자가 역전하며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돈이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떨어지는 것을 보니 너무도 불안했다. 뭐 이런 도깨비 장난이 있나 싶었다.

이 사실을 단톡방 친구들이 알면 또 얼마나 찧고 까불까. 생각이 거기까지 흘러가자 김 선생의 창백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옥쇄하자, 그래, 배수의 진을 치고 차라리 강물에 빠져 죽자!’ 김 선생은 오기로 아랫배에 힘을 주며 전화기를 힘주어 잡았다.

애플을 클릭하고 절반 남은 주식을 미련 없이 팔아치웠다. 

Q 코인도 몽땅 팔았다. 두 가지 처분한 금액이 지체 없이 바잉파워에 적립되었다. 액수를 확인한 김 선생은 곧 바로 비트코인을 클릭했다. 

매입창을 선택하고 숫자 1을 눌렀다. 비트코인 한 개를 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BUY’를 클릭했다.

잠시 후, 스탁리스트 목록에 ‘Bitcoin 1 Share’라고 입력되었다. 김 선생은 천천히 일어나 손을 씻었다. *

 

이용우

LA거주 소설가 / 미주문협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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