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이 가을에 읽기 좋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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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식물이나 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타샤 튜더의 사계절이 화보와 함께 나와 있는 <타샤튜더의 정원>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한 권이다.
마음이 심란하고 스산해질 때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꽃과 나무를 무척 좋아했던, 동화작가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그녀의 나날을 엿보고 있으면, 옛날 외할머니 꽃밭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겨울을 제외하곤 거의 맨발로 정원을 거닐며 야생사과를 따거나, 화분을 손질하는 할머니의 일상은 문명의 이기에 지친 현대인들이 분명 돌아가고 싶은 오래된 미래다.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것은 고작 1만 2,000년 전이다. 그런데 크레오소트 관목과 모하비 유카 나무도 나이가 이 정도다. 이들은 무성번식을 통해 암수교배 없이 스스로를 복제해서 재생산 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오래 생존한다.
크레오소트는 뿌리가 발달되어 있어 물이 없어도 2년 정도는 그냥 버틸 수 있으며, 유카나무는 영하 3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기후존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나무의 말> 작가 레이첼 서스만은 몇 천년 동안 사는 나무들의 특성은 극한 환경에서 오히려 굉장한 적응력을 발휘해서 생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극에서 그린랜드까지 모하비사막에서 호주 아웃백까지 10년간 세계를 누비며 2,000살이 넘은 생명체를 카메라에 담고 소개한 이 책은 이 나무들이야말로 우리 지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한다.
오래된 나무를 보고 있으면 고작 100살도 못 채우고 사라지는 인간들이 그들에게 너무 못할 짓을 많이 하고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경외감과 든든함을 주는 나무들, 생명의 존엄함을 살아남아서, 보여주는 그들이야말로 영원한 인류의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아시아 작가들 작품집을 읽게 되었다. <물결의 비밀> 단편집은 ‘바오난’이라는 베트남 대표작가를 비롯해 프란시스코 호세, 리앙, 찻 껍찟띠, 츠쯔젠, 마하스 웨타 등 필리핀, 대만, 태국, 중국, 인도 작가들의 대표작이 총망라 되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의 독서취향은 너무 서구나 미국, 일본 등에 편중되어 있다.
동남아시아를 관광으로 다녀온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 그들의 삶이나 가치관, 문화를 알기위해선 그들의 작품을 읽어보는 것이 최적일 것이다.
장장 20년을 끈 월남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야기와 동남 아시아인들이 지니고 있는 환상적 샤머니즘의 실체, 절대적인 가난에서도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왠지 생긴 것이 비슷해서 그런지 우리네와 유사한 점이 많아 쉽게 공감이 간다.
총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는데 작품마다 작가들의 개성과 토착적인 이국의 정서가 넘쳐 매우 즐겁게 읽힌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철학책 치고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책은 비루함, 자긍심, 경탄, 질투, 두려움,욕망등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감정 48가지를 해부하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추상으로서 철학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철학책이다.
가끔은 내 자신의 이런 감정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는 채 무조건 화내고 섭섭해하고, 남을 원망할 때가 있다.
머리에 흰머리가 좀 늘고, 얼굴이 조금만 까칠해지면 오만 해결책을 궁리하면서도 정작 내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생기는 사고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지피지기, 알아야 이길 수있다.
상대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왜 세상은 갈수록 막장이 되어가는지, 트럼프는 선거에서 지고도 왜 아직도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왜 세상의 부부들은 아직도 동상이몽 중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그래서 그랬구나, 결국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져야 세상은 살맛이 날 것이다. 살맛나는 세상을 위한 모든 어른들의 필독서라 할만하다.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로런스 블록이 지은 이 책은 참 독특하다. 각기 다른 화가가 그린 열일곱 점의 그림을 소재로 열 일곱 명의 작가가 써내려간 열 일곱편의 단편작품을 모아 만든 책이다.
예를 들면,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라는 그림을 보고 작가 데이비드 모렐은 반 고흐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데, 그에 따르면 반 고흐의 작품에서 나타난 주황은 고통을 의미하고 파랑은 그가 광기에 젖어있을 때 많이 사용한 색깔이라는 걸 소설 속 주인공이 밝혀낸다.
또한 미국을 대표하는 17인의 작가들이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림 한 장을 보고 만든 소설들은 그 자체로도 대단히 흥미로울 뿐 아니라, 책에 실려 있는 유명한 그림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폴 고갱의 <부채를 든 소녀>, 르누아르의 <국화 꽃다발>, 조지아 오키프<붉은 칸나>, 아트 프람의 <모든 안전수칙을 명심할 것> 등 그림 속에서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을 창조해내다니, 그저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풍성한 잔치상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나는 책이다.
올해는 텍사스 단풍이 유난히 예쁘다. 백악관의 새주인이 될 우리의 엉클 조 아저씨, 바이든의 명언처럼 지금 우리는 힐링이 필요하다. 짙어지는 늦가을 저녁, 커피한 잔에 책 한권은 어떨까.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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