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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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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56
“형님, 요즘 거시기 사정이 어떠시우?”
내가 빙긋이 웃으며 물었더니 동서는 ‘어, 뭔 말이에요? 거시기라니?’ 하며 부엌 쪽을 힐끗 쳐다본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느낌으로는 알아차린 모습이었다.
“아, 잠자리 기상이 맑으냐 흐리냐 이 말이우.”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자매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었건만 동서는 금시 얼굴은 붉히며 마늘 까던 손을 허둥거렸다.
“아이 참, 난 또 무슨 소리라고.... 아 그거야 동서가 더 잘 알잖아요, 코로나바이러스 핑계로 각 방 쓴지 오래 됐어요.” 동서는 또 부엌 쪽을 힐끔거리며 귓속말하듯 속살거렸다.
“아니, 그럼 오개월 넘게 한 번도?” 내가 불끈하자 동서는 급히 손을 저었다.
“아아, 거 지난 번 락다운 해제됐을 때, 그 때는 거시기.... 그런데 또 셧다운 됐잖아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니, 이 자매들은 무슨 시장이나 주지사의 로봇트인가, 주정부가 락다운하면 잠그고, 시장이 해제하면 풀고, 아니, 거시기가 코로나바이러스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잠궜다 풀었다 하는 거야, 내 참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동서는 물젖은 손가락을 얼른 세워 내 입을 막았다. 그리곤 또 속살거렸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말 문제가 많아요, 코로나바이러스를 내세워 꼼짝을 못하게 한다니까요, 어느 땐 저 사람이 정신쇠약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뭘 사오라 해서 마켓에라도 갔다 오면 문 앞에 세워두고 전신에 소독약을 분사하는데, 나중에는 신발바닥에까지 뿌려대요. 화학세제로 전신세례를 베푼다니까, 남편을 아주 나쁜 바이러스 취급한다고요. 이런 판국인데 거시긴들 허락하겠어요? 그래, 나는 그렇다 치고 동서 사정은 어때요?”
내 마누라는 제 언니보다 한 수 더한다. 아내는 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동서가 열거한 소독방법에 더하여 즉시 샤워장으로 직행할 것, 씻은 후에는 이층에서 2시간 동안 자가 격리할 것을 규칙으로 정해 놓았다. 밥그릇, 국사발 바닥에 1,2,3,4 번호를 매겨놓고, 수건, 비누, 치약도 따로 쓰란다. 직장만 아니라 잠시 담배 사러 나갔다 와도 즉각 샤워와 격리를 선고한다. 각 나라가 입국자들에게 두 주간의 자가 격리를 의무화 하고 있다지만 이건 매일 보는 식구에게 그런 규칙을 적용하다니 어이없고 기가 찰 노릇이다. 할 일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두 자매가 SNS에 넘쳐나는 공포정보에 쇠뇌당한 결과라지만 그 과민증에 당하는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그래서 말인데 동서, 내가 우리 두 사람의 생일을 기해 거사를 꾸몄어요. 그게 뭣이냐 하면, 생일 핑계로 한 잔 거하게 마시고 오늘 밤에 함께 해치워버리자 이거야, 어때? 오늘 밤 저 두 자매를 남성의 강력한 성性바이러스로 코로나공포에서 해방시키자 말이지, 오케이?”
나의 엉뚱한 제안에 동서는 ‘어~ 거~어.....’하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거절하지는 않겠다는 느낌을 풍겼다. 나는 그런 동서를 살피며 얼른 못을 박았다.
“자, 우리 오늘 나이 한 살 더 먹는 값을 합시다. 저 자매의 바이러스 병을 치료합시다. 약속!”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손을 내밀었다. 동서는 쑥스럽다는 듯 삐죽삐죽 손을 맞잡아 엄지도장을 찍고는 붉어진 얼굴로 또 한 번 부엌 쪽을 힐끗 했다.
동서와 나는 두 살 차이다. 내가 두 살 더 많다. 그런데 항렬로는 그가 위이다. 그것은 동서가 내 아내의 두 살 위 언니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처형과 동서는 동갑이고 나는 아내보다 네 살 많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서로 ‘하오’와 ‘하게’를 적당히 섞으며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우연히도 동서와 나는 생일이 같아서 더 친근하게 지낸다. 한인타운 전자상가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동서는 펜데믹으로 직장을 잃어 실업수당이나 타먹으며 집콕하고 있다. 반면에 나는 이십년 가까이 우체국에 근무하고 있어서 손윗동서 보다는 형편이 나은 상황이다. 때때로 동서는 ‘연방공무원께서...’ 어쩌고 하며 농담 비슷하게 추켜올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인지 동서는 내 주장을 곧잘 따라 주었다.
동서와의 약속을 상기하며 곁눈으로 마누라를 살폈다. 아내는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체 운전대를 오닥지게 틀어잡고 앉아 수작 걸 틈을 주지 않았다. 술 한 잔 걸치면 으레 집적거린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일부러 더 쌀쌀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생일이라는 유치한 권리행사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누라가 어떤 방어막을 치더라도 나는 뚫고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먹기 싫은 부로콜리무침과 양파샐러드, 그리고 레몬주스도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면역력에 좋다고 집에서도 아침밥상을 도배하는 그 맛없는 풀떼기들을 생일날 처갓집에 와서까지 꾹 참고 먹었다. 그 정성을 봐서라도 오늘은 거절을 못하겠지, 계산을 튕기는 것이다.
“여보, 애들 저녁 먹었는지 전화해 봤어?” 찬바람 부는 마누라 얼굴근육이나 풀어보자고 적막을 깼는데 아차 싶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무섭다고 제 언니 집에도 아이들을 안 데려온 마누라를 질책한 것 같아서였다. 마누라는 옳다 싶은 얼굴로 빈정거렸다.
“걱정 붙들어 매슈, 벌써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몇 신데 벌써 잠자리에 들어? 어이쿠, 이런, 열한 시가 넘었네.”
“꼭두새벽 출근해야 할 사람이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아서 대체 어쩌겠어?”
아내의 바가지에 나는 그만 입을 닫았다. 공연히 저런 말꼬투리에 물려가다가는 거사를 망칠 위험이 농후하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해 거라지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며 나는 얼른 아내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
“여보, 내가 얼른 샤워하고 내려올게 물 좀 끓여놔, 우리 커피 한 잔 하자.” 나는 우정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는데 곧바로 날아 온 마누라의 기막힌 역공에 뚜껑이 확 열리고 말았다.
“커피는 무슨 커피, 샤워 끝나면 자가 격리하는 거 잊었어?”
“뭐야? 자가 격리? 아니, 언니네 집에 갔다 와서도 격리야? 당신 친정도 못 믿어? 무슨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시도 때도 없이 자가 격리야? 이 여자 정말 대책 안서네!”
“여보세요, 형부가 오늘 마켓을 세 군데나 돌아다니며 장을 봤데, 당신 형부하고 딱 붙어 앉아 두 시간 넘게 술 마셨잖아? 당신 팔뚝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득실거릴 지도 모른다구, 아침 일찍 출근하려면 얼른 샤워하고 얌전히 주무셔, 나는 애들 방에서 잘 테니까.”
마누라는 자기 추리를 조리 있게 피력한 후, 내 손에 들린 가방을 홱 낚아채더니 아이들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더니 나는 비 맞은 개꼴로 마누라가 닫고 들어간 아이들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득, 자신의 생일상차림을 위해 마켓을 세 군데나 헤매고 다녔을 동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서도 지금 부뚜막위의 강아지처럼 외롭게 격리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서와 도장 찍었던 엄지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씁쓸했다. 펜데믹시대를 살아가야 힐 남자의 숙명을 미워하며 나는 천천히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
이용우
소설가 | LA 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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