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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세이]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그러니까, 삼 일에 걸쳐 가지치기가 끝났다. 집 앞과 뒤란 화단에 있는 작은 나무들을 반으로 쳐냈다.
둥글었던 모양새도 사각형으로 바꿨다. 작은 나무들이라고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덤불처럼 수북해졌다.
낮에 흘려서 들은 얘기가 마음에 꽂혀 밤새 잠을 설쳤다. 신경 안 쓰고 살겠노라 마음은 먹었지만 나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라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삐죽삐죽 가시 달린 생각들이 가지에 가지를 치고 올라와 숲을 이루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우선 내가 살아야 하니 잘라내는 게 상책이 아닌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서성이다가 전지가위를 찾아들었다. 그동안 몸이 아주 편했던 모양이다. 잡생각이 들어와 똬리를 틀어도 몰랐다.
오랜만에 가위질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일단 키를 반으로 쳐내기로 했다. 큰 가지들은 손 가위로 먼저 잘라내고 잔가지들은 양손으로 하는 큰 가위로 자르기로 했다.
작년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어깨에서 팔꿈치, 손목까지 난동을 부려 간신히 어르고 다독이면서 살지 않았던가. 코비드 19로 힘들다고 원망만 했는데 그 덕에 좋아진 것도 있다.
교정을 받으며 겨우 일만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큰 전지가위를 양손으로 쥐고 척척 가지를 쳐내고 있으니 신이 났다.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잘 안 보인다. 그럴 땐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면 한 눈에 들어온다.
작년 가을에 나무 깎는 사람들을 불러 잘라내고 다듬었는데 그동안 참 많이도 자랐다. 끊어진 가지에서 다시 길을 내고 올라오는 가지들. 조용하게 제자리에서 자라는 나무가 제일 예쁘다.
하지만, 나무를 자를 때마다 통째로 뽑아내고 싶은 나무가 있다. 도대체 정원수로는 부적합한 나무를 왜 심은걸까. 그런 나무는 다른 나무 속까지 터를 넓혀 사방으로 뿌리를 뻗었다.
다른 나무가 몸살을 앓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섭게 번지며 없는 틈도 만들어서 밀고 올라온다.
우리 집 앞마당 가에는 큰 물푸레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같은 날 똑같이 심었을 텐데 잎이 올라오고, 단풍이 들고 또 잎이지는 순서까지 다르다. 집 쪽으로 붙어 있는 나무가 매년 모든 일을 먼저 한다. 무슨 일이든 말 안 해도 척척 미리 알아서 하는 사람같다.
작년에는 길쪽으로 붙어있는 나무가 오랫동안 잎이 올라오지 않아 죽은 줄 알고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늦잠을 잤던 모양이었다. 시작이 늦긴 했지만, 그런대로 제시간 다 채우고 늦게라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성실한 사람같았다.
뒤란에 있는 백목련은 밑동부터 올라온 가지 두 개가 나란히 잘 자라고 있다. 두 가지가 크고 작지도 않은 게 꼭 단짝 친구같다. 대문 앞에는 큰 가지가 세 개였던 소나무가 있었다. 중간크기의 가지 하나가 말라서 잘라냈더니 몇 해를 시름시름 앓다가 송두리째 죽고 말았다.
시기와 질투로 무너지고 마는 관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있는 옆집 단풍나무도 그렇다. 봄이 다 올 때까지 잎을 떨구지 않는다. 잔뜩 심통이 났든지 아니면 욕심이 많아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가슴에 씨를 뿌려놓으면 물도 주고 햇빛도 주어 잘 자라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냥 내버려두고 방치해두면 예쁘게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가끔 삐죽삐죽 올라오는 웃자란 가지도 다듬어 주고 사랑을 줘야 건강하게 좋은 향을 품고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토양이 맞지 않는 곳에 씨를 뿌리면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결국 거두는 것도 씨를 뿌린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거둘 때는 상처가 남지 않도록, 잔뿌리가 남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때로는 슬프지만,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말벌소리만 무성한 잔가지에는 열매는커녕 작은 새 둥지 하나 틀지 못한다. 둘째 날이었다. 첫날과 다르게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중무장을 했는데도 그만 손등을 벌에 쏘이고 말았다.
우리 집 추녀 밑 작은 나무숲에 집을 짓고 살았나 보다. 그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 벌들을 키우며 가정을 꾸렸던가 보다. 그걸 첫날 내가 가지를 치면서 집을 허물어 버린 게 분명하다. 보복이었다.
하지만 허방에 지은 집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벌들도 알고 있었으리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를 공격해서 얻는 게 뭐가 있을까. 아마 그건 충격에 대한 대가였다. 그리고 아픈 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겁하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니 식구들이 난리가 났다. 하지 말라고 하니까 기어이 또 나갔다고 알코올로 문질러 닦아주면서 야단법석, 잔소리에 귀가 더 아프다. 식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5분 만에 접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잠잠해진 틈을 타 다시 나갔더니 남편이 따라 나왔다. 전기톱으로 하면 쉬운 일을 왜 혼자 하느라 법석을 떠냐며 벌게진 내 얼굴을 보며 전깃줄이나 잡으라고 통박을 준다.
나를 다듬는 일에 왜 남의 도움이 필요한가. 남을 깎고 다듬으려 하기보다는 나를 자르는 것이 쉬운 일임을 이 나이 먹고서야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다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 사과의 말을 듣고 싶으면 상대방 말을 막아선 안 된다.
받고 싶으면 먼저 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지치기하면서 참으로 많은 걸 배웠다. 슬픈 일, 안 좋은 일에 함께 슬퍼해 주고 위로해주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쁜 일에 진정으로 기뻐해 주고 축하해주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젠 원하지 않아도 미니멀 라이프를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이 그러하니 관계 또한 당연해진 만큼 생각도 미니멀해져야 할 때인 것 같다.
끊어진 길에
다시 길을 놓기 위해
가지들을 친다
숨을 고른다
잘라내도
다시 돋는 인연, 그 잔상들
때로는
덧나고 진물도 흘렀지만
견딘 만큼 고요해진 수형을 만난다
잘리면서 잡혀가는
조금은 가벼워진 무게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나를 본다
오늘도
나의 잔가지들을 잘라내야 하겠다
숨을 고른다
김미희, (가지치기) 전문
김미희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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