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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윌리엄 시드니 포터’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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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문화 댓글 0건 조회 3,531회 작성일 19-07-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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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주청사를 구경하고 나서자 친절한 구글맵 아가씨는<윌리엄 시드니 포터 하우스>가 여기서 6분 거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난 길가에 세워둔 차로 가서 파킹머신에 동전을 몇 개 더 집어넣고 윌리엄 시드니 포터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았다. 라스트네임을 보니 그의 조상은 항구의 짐꾼이었을 것만 같고, 그런 포터들이 잘 마시는 싸구려 와인을 포터와인이라고 칭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미들네임이 시드니 인 걸 보니, 시드니에서 포터를 했던 사람의 후손인지도 모르겠다. 난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오스틴 초기정착민들 중에 뭔가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의 이름인걸로 결론을 냈다. 유월 초인데도 오스틴의 날씨는 이미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과 후덥지근한 열기로 가득했다. 그런 탓에 길가에 오 분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주청사 안도 알고 보면 더위를 피해 들어간 것이었다. 누가 봐도 멕시칸 후손임이 분명한 키가 작고 통통한 여자 가이드는 텍사스가 어떻게 생겨난 주인지를 똑 부러진 영어로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주청사 안은 시원해서 살 것 같았다. 몇 대를 거친 미국인이 말하는 역사야 어떻든 간에, 아무튼 텍사스는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빼앗은 약탈의 땅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상원의원실엔 당시 멕시코와의 전쟁을 그린 대작 2점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역사는 승자만 기록해준다는 진리를 그 그림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구글맵에는 초긍정 미국인들이 다녀온 장소를 평가하여 매겨놓은 관광지 후기 별표시가 있다. 가서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오늘만 해도 그랬다. 평점 4.3으로 나온 올드 베이커리 뮤지엄은 그림 몇 점 달랑 걸어놓은, 뮤지엄 이라기보다는 갤러리에 더 가까운 곳이었고 유명한 커피샵도 그랬다. 파킹하기가 서울만큼이나 어렵다는 오스틴 다운타운에서 몇 바퀴를 돌다 겨우 파킹을 하고 찾아간 곳이어서, 난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킹 한 김에 윌리엄 시드니 포터 하우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더위 때문인지 주소에 나온 거리의 숫자는 좀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서서 구글맵을 다시 검색해보니, 그 6분이라는 거리는 차로 이동을 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었다.

앞서 걷는 흑인여자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더운 여름에 긴 가디건을 입고 백팩을 맨 여자는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 비틀 걷고 있었다. 여자의 옷차림은 깔끔했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여자는 가로수 나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사람들 사이를 요리저리 피해 다녔다. 언젠가 오스틴 홈리스들은 겉모습만 봐서는 여행객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여자는 밤새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환경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여자가 횡단보도를 걷기위해 신호등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자가 서 있는 곳을 지나며 나는 겨우 3가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텍사스의 여름 한 낮에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여행객이다. 아들은 대학때부터 오스틴에서 살았지만, 방문자센터에서 나누어주는 지도에 나온 장소는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그저 자전거를 타고 직장과 집을 부지런히 오가며, 홈리스들을 보면 손을 흔들어주고 주말이면 청소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다닌다. 원래 동네 주민은 그런 것이다. 하긴 나 역시 달라스 포트워스 관광명소는 친구나 친척이 방문할 때만 가보는 곳이다. 케네디가 저격당한 장소나 스탁야드 같은 곳은 그저 관광지인 것 이다. 결국 모든 장소는 새로움이란 좋은 반찬이 명소를 만드는 것이다.
이 더운 여름에 긴 치마를 치렁치렁 입고 걷던 한 가족이 호텔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너무 더워서 다운타운 구경을 포기하고 쉬려고 들어가는 모양이다. 나도 이제 그만 차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때 덩치 큰 빨간 트럭이 서 있는 소방서 건물이 보이더니 그 옆에 작은 가정집이 보인다. 야드 앞에 제법 큰 팻말이 꽂혀있다.
‘윌리엄 시드니 포터 하우스’ 작가명 오 헨리
오헨리, <마지막 잎새>의 작가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였던 것이다. 오헨리가 살았던 집은 정말 평범한 가정집 이다. 꽃밭이 있는 앞마당과, 마루바닥이 깔린 작은 포우치에 의자를 놓고 담소를 할 수 있는 지붕이 초록색인 집이다. 그는 작가가 되기 전 오스틴에서 평범한 은행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 은행에서 예기치 않은 금융 사고가 나서 5년이나 징역을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복역 중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매거진과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의 작품은 기드 모파상의 영향을 받아 풍자와 애수가 깃든 문체로 평범한 미국인들의 생활을 그린 작품이 많다. 특히 반전 있는 결말이 특징적이어서 평론가들은 이러한 결말을 오헨리식 결말이라고 칭한다. 우리가 잘 아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그날은 ‘가던 날이 장날’ 이라고 하필이면 정기 휴일이어서 집 안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지나가던 여자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여자는 이 더운 여름, 주민들은 별관심도 두지 않는 작가의 집을 방문한 동양인 여자가 특이 했던지, 활짝 웃으며 “그럼요, 몇 장 찍어 드릴께요” 하며 스마트폰을 건네받는다.

그날 난 밀짚모자를 쓴 채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땀을 찔찔 흘리며 몇 장의 사진을 남겼다. 폭염과 함께 궁금증이 몰고 온 짧은 시티 트립은 그렇게 끝났다.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파생된 TRAVEL 은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즐거움과 해방감이 아닌 노동과 수고, 고통의 의미였다. 어쨌든 난 역마살이 끼었는지 핑계만 있으면 길을 떠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오헨리의 흔적도 보게 되었는데, 문득 우리는 작가를 너무 필명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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