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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 겨울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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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새해 아침, 오랜만에 세 식구가 모여 떡만둣국을 먹었다. 요즘은 손만두와 당일 만든 떡국떡을 살 수 있고, 한국 식품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에 유명 식당 사골국물까지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만둣국 끓이는 게 한결 편해졌다. 물론 내 손으로 빚은 만두에 맛을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시간과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아쉬운 대로 만족한다.
예전엔 설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만두를 준비했다. 남편이 떡국보다는 김치 만둣국을 좋아해서 만들었는데, 은근히 손이 많이 갔다. 손목이 부실해서 만두소에 들어갈 재료를 다지고 짜는 게 가장 힘들었다. 조금만 만들어 먹고 치우면 될 텐데, 예나 지금이나 손이 커서 300개는 기본이니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만두소가 준비되면 딸내미까지 합세하여 만두를 빚었다. 처음엔 둘 다 반달 모양만 만들더니 어느 순간 장족의 발전을 하여 양 끝을 붙여 동그랗게 빚는 데 성공했다. 빚어 놓은 만두가 쟁반에 쌓이면 마음까지 넉넉해졌다. 만두를 삶아 건지거나 찌는 건 남편 몫, 냉동실에 살짝 얼려 소분해 담아 보관하는 건 내 몫이었다. 그러면 구정까지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꼬리와 사골도 몇 번 고아서 기름을 거두어 진국을 만들고, 건나물은 뭉근하게 삶아 담갔다가 볶았다. 명절엔 집안에 기름 냄새가 풍겨야 명절 기분이 나는 것 같아서 생선전이나 부침개를 부치며 극성을 떨었다.
그땐 힘들어도 하루 앓고 나면 거뜬했는데, 건강을 잃고 나니 부엌일이 점점 무서워서 만두는 주문해 먹는 음식이 되었다.
설날인데 그것만 주기 서운해서 딸이 좋아하는 갈비찜도 했다. 물가가 올라서 고기 두 팩 사니 백 불 돈이었다. 갈비는 기름 떼고 뼈 빼면 실상 고기가 많지 않아서 한 팩으론 넉넉하게 먹기 어렵다. 애호박을 사서 호박전도 넉넉하게 부쳤다.
둘이 살 땐 남편 좋아하는 음식만 했는데, 지금은 집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하게 된다. 그나마 부녀 식성이 비슷한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겨울방학이라 집에 왔는데 바빠서 잘해주지도 못하고, 우리 집 전통인 크리스마스 여행도 가지 못했다. 집 나가봐야 고생이라고 집이 좋다고 했지만, 내심 미안했다. 집에서 딸내미 목소리가 들리니 모처럼 사람 사는 집 같다. 덕분에 남편 수다도 늘었다.
아침을 먹고 딸과 함께 동네를 걸었다. 바람만 안 불면 영락없이 봄 같았다. 호숫가로 가는 길목에 민들레와 엄지손톱만 한 들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어쩌자고 벌써 나와 그리도 해맑게 웃는 것인지, 천진한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남편의 유일한 문화생활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운동은 안 하지만 스포츠 경기 시청을 좋아하고, 뉴스나, 다큐멘터리, 음식 채널 등을 즐겨본다. 텔레비전 화면에 줄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병이 점점 깊어졌다.
그걸 보니 옛 생각이 났다. 요즘이야 그런 곳이 없겠지만, 동네 삼류극장에 동시상영을 보러 가면 종종 화면이 직직거리고 줄이 생겨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그땐 그것도 귀해서 열심히 보곤 했다. 우리 집 텔레비전이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불편함이 거슬렸던 남편은 나 몰래 새것을 주문했다.
많고 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일월 첫날, 텔레비전이 왔다. 인터넷을 연결하자 깨끗하고 밝은 화면이 들어왔다. 새 장난감이 생긴 남편은 채널을 여기저기 돌이며 기뻐했다. 좁은 거실에 85인치라니, 화면 올려보다가 목 떨어졌다고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처음 접한 소식은 일본의 강진과 쓰나미 피해 상황이었다. 화면으로만 보아도 무서웠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하루를 사는데, 전쟁이 무엇이고 인간의 욕심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하늘이 거둬 가고자 하면 단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유튜브를 연결하니 남편이 좋아하는 다큐 공감이 나왔다. 언제 방영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원도 ‘안도전’이라는 마을의 아름다운 설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피부로는 와 닿지 않는 추위, 아궁이에 활활 타는 장작이 방금 전까지 두려웠던 마음을 녹여주었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산중의 겨울, 크리스마스카드에서 본 듯한 흠도 티도 없는 설국에서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푸근하게 다가왔다. 물이 얼면 사월이나 되어야 풀린다는데, 불편을 불평하지 않고, 그저 하늘이 주는 물과 공기와 날씨에 감사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을 넘어 행복해 보였다.
나는 불편함에 감사해 본 적이 있을까. 배고파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더워 죽겠다, 졸려 죽겠다, 열 받아 죽겠다, 좋아 죽겠다, 왜 그렇게 말끝마다 ‘죽겠다’를 붙이고 살았을까. 새해에는 애써 좋은 말을 찾아 써야지. 불편했던 마음 밭을 갈고 넓혀 감사하며 살아야지, 지금보다 더 많이 돕고 살아야지, 하루를 살더라도 계산하지 않고 피는 겨울 민들레처럼,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올해도 새해는 어김없이 오고야 말았다. 아무쪼록 재난, 죽음, 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한 분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회복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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