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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스페인 여행기3 (카탈루냐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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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기차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공항처럼 짐검사를 한다.
자동차가 대세인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여기선 기차가 아직도 사랑받는 대중교통인 것 같다. 수많은 기차의 게이트 넘버가 30분 전에야 올라오기 때문에 전광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다행히 우리가 타기로 한 고속열차(iryo)는 제시간에 맞추어 왔다. 차로 6시간 거리인데 고속열차로는 2시간 반 만에 간다. 지정석에 가서 앉으니 열차는 곧이어 출발을 한다. 한 나라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아무래도 비행기보다는 열차이다.
예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탔던 기차에선 곳곳에 펼쳐진 드넓은 양귀비 들판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그날 난 마네나 모네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왜 그렇게 양귀비꽃들을 그림소재로 많이 다루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스페인 들판은 낮은 구릉이 많고, 간간히 올리브나무 밭이나 와이너리, 빨간 벽돌지붕의 집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강렬한 태양은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너무 강렬해서 창 브라인더를 살짝 내려야했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편안한 풍경들이 계속 이어지고, 철로주변의 쓰레기무덤 역시 낙천적인 이 나라 행정력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기차는 살짝 지루해질 무렵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숙소는 바르셀로나 중심가 람블라스거리에 있었다. 숙소가 있는 골목 어귀에 군고구마와 군밤을 파는 아저씨가 있어 3유로를 주고 군밤과 군고구마를 사 먹었다. 이후 이 군고구마 박스는 우리 호텔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정표가 되었다.
마드리드보다 등급이 높은 호텔이어서 그런지 도심지에 있는데도 커다란 정원이 있었고 전망이 좋았다. 한인 여행 블로거가 추천한 호텔이었는데, 역시 젊은 여성의 눈썰미는 신뢰할 만하다.
요즘은 누가 얼마나 정확한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느냐가 여행의 질을 가른다. 과연 우리가 며칠 묵을 호텔은 카탈루냐 광장을 비롯한 바르셀로나의 모든 관광지와 무척 가까웠고 호텔의 조식도 맛이 있었다. 특히 지중해가 보이는 해변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는데, 처음 지중해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한니발같은 명장들을 탄생시킨 고대 지중해 패권 전쟁담이다.
아, 과연 지중해는 인접한 나라라면 누구나 탐낼만큼 매력적인 바다 빛을 가지고 있었다. 해변의 중앙광장에는 콜롬버스의 동상이 있었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아메리카 신대륙을 힘껏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이사벨 여왕에게, ‘여왕님, 저 바다 멀리 어마어마한 공짜 신천지가 있는데 제가 찜해놓고 왔답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지중해의 석양을 바라보며, 해물 빠에야와 꼴뚜기 튀김을 먹었다. 웨이터는 마치 김치처럼 올리브를 한 사발씩 각 테이블마다 갖다 주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자마자 걸어서 카탈루냐 광장엘 갔다. 혁명의 중심지였던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 난 소설을 볼 때 마다 궁금했다. 그러나 혁명이 사라진 광장엔 쇼핑객들의 바쁜 걸음과 관광객들이 던진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수많은 살찐 비둘기떼들이 뒤뚱거릴 뿐이다. 오직 광장 오른편 민병대원들이 점령해서 창틀위에 기관총을 올려놓고 쏘았다는 소설속 빌딩과 건너편에 있는 엘코르테 잉글레스 백화점만이 그 날의 일들을 말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은 식품코너가 제일 인기 있다는 이 백화점은 당시 총알을 피하기 위해 건물외벽과 유리창을 모두 합판으로 가린 덕분에 그나마 건재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영국기자, 조지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관한 신문기사를 쓰기위해 스페인에 왔으나 곧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공화파 민병대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가 속한 통일 노동자당을 비롯한 공화파는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파시즘에게 마드리드를 내주고 오웰 역시 목 부상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빠져나와 프랑스로 탈출했다.
그 후 스페인은 프랑코 일당의 기나긴 군사독재가 시작 되었다.나중에 전쟁이 끝난 후 바르셀로나를 다시 찾은 오웰은 분노하였고, 결국은 이 분노가 <카탈로니아 찬가>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카파이즘의 창시자가 된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도 스페인내전의 참혹함을 다룬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카탈로니아 지방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카스티야지역과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르셀로나시내엔 어디를 가나 카탈로니아어, 스페인어, 영어로 표기를 하고 있다. 시청에 걸린 깃발도 스페인기가 아닌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의 카탈로니아기이다. 지금도 주민 대부분은 독립을 원하고 있지만, 스페인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행을 하며 소설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가거나 등장하는 음식을 맛보거나 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물론 머릿속으로 유추 해보는 것도 좋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직접 가게 되면 훨씬 공감의 폭이 넓어지며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확실히 오웰의 찬가처럼 삶이 어둡지 않고 쾌활한 색조로 다가오는 활기찬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어쩌면 우리 모두는 다양한 삶의 전선에서 혁명을 원하는 있는 지도 모른다. 그 혁명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말이다.
아, 타파스를 먹으러 갈 시간이다. 내일은 카탈루냐 출신 천재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불멸의 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러 갈 예정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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